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운사 Mar 17. 2024

290. 깔사다 마을을 지나서(8/14)

마음이 급한 조선 과객

아르수아(Arzua)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오늘은 힘이 들더라도 30Km 이상을 걸어서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이다. 더구나 14~16일까지가 이곳 스페인은 성모마리아 국경절 연휴라서 산티아고에 순례객 말고도 일반 관광객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스페인 순례객들의 전언이 있다. 새벽 6시에 일찌감치 출발하여 부지런히 걸어서 6Km 지점에 있는 깔사다(Calzada) 마을을 통과하게 된다. 이것저것 둘러볼 것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따라서 사진도 찍지 않고 어둑한 새벽길을 걸은 것이다. 때로는 약간 험한 옛날 순례길을 버리고 쉽고 편한 포장도로를 택해서 걸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은 조선 과객 금삿갓의 과욕이다. 걸다 보니 중간에 지나쳐야 할 마을 들을 그냥 다 놓치고 샛길로만 걸은 것이다. 뻬레곤뚜노(Pregontuno) 마을과 깔사다 마을도 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외곽길은 걸었다.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레스토랑도 알베르게도 안중에 없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걷는데, 외딴 마을을 지나고 약간의 언덕길에서 또 하나의 인생 순례길을 마친 기념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순례길의 선배인 기념물을 차마 그냥 스칠 수가 없었다. 길레르모 와뜨(Guillermo Watt)라는 순례자로서 69세 1993년 8월 25일에 이곳에서 하느님의 곁으로 인생 순례를 마치고 돌아갔다고 표시되어 있다. 800Km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길에서 인생을 마감한 많은 먼저 간 순례자 기념비를 보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인생 순례를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갈 것이다. 그 길이 순조로웠든 가시밭길이었든 그 길을 버리고 가는 것이다. 그가 신었던 신발 모형의 조형물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 길을 지나가던 순례객들이 하나씩 주어다 올려놓은 조약돌들이 같이 그를 기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87. 오레오를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