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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un 08. 2024

19. 매춘과 강간을 다루는 거장의 애로서(曖露書)

입체적 미인이 없는 입체파

모든 것을 조각내고 재구조화해서 필요에 따라 평면화한 그림들에도 에로스는 존재하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Rape of the Sabine Women)>를 보자. 얼굴과 몸, 팔, 다리가 마치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든다. 그런 혼란이 오히려 힘으로 여인들을 납치해 가는 잔인무도한 면을 더 강화시켜 준다. 날카로운 창과 반쪽짜리 병사 얼굴, 뒤틀린 말발굽, 그 가운데 새하얗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드러낸 모습이 보인다. 붉은 망토가 아무렇게 걸쳐진 흰색의 풍만한 허벅지와 젖가슴이 도드라진다. 어찌 보면 기괴스럽기도 한 그런 모습에서 거장의 에로스가 분출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 <게르니카(Guernica)>가 금삿갓의 느낌에는 가장 강렬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걸작인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은 총 다섯 명의 매춘부들이 나온다. 왼쪽의 세 여인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약간 쭉쭉빵빵한 매춘부를 그런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의 두 여인이 좀 다르다. 왜냐하면 얼굴에 위험하고 불운한 것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술적인 아프리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당시 쾌락의 도시인 파리에 만연해 있던 성병으로부터의 보호를 기원하고자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다. 매춘굴에 들어오면 성병이 전염될 위험이 매우 높은데 이런 주술적인 방법이 통할까? 과거에 아비뇽에 갔을 때 그림 제목이 생각나서 아비뇽 처녀들이 어디 있었느냐고 알아보니 바르셀로나에 있는 매춘거리란다. 사실 이 그림 가장 왼쪽의 여인은 원래 홍등가로 들어오는 남자 선원이었다. 하지만 수십 차례의 데생과 무수한 수정 작업의 덧칠을 거치면서 변하고 변했단다. 최초에는 걸어 들어오는 선원과 해골을 들고 있는 대학생으로 구상했는데, 이 선원만 남는 안으로 변했다가 다시 최종적으로 다섯 명의 여자로 탄생했다.

현대 한국사의 비극도 한몫한다. 바로 전쟁의 잔인함과 비극을 나타낸 <게르니카(Guernica)>와 비슷한 주제의 그림이지만 표현 방식이 너무나 대조적인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미군들의 만행과 전쟁의 피해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린 작품이다. 벌거벗은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바로 총탄 앞에서 학살당하기 바로 전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땅바닥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고, 임신하여 배가 부른 여인들도 있다. 이 그림은 당연히 한국으로 반입하는 게 금지당했다. 프랑스 자유진영에서도 반발을 했고, 결국은 주문한 공산당도 외면하고 말았다. 게르니카 보다는 훨씬 더 사실적이고 에로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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