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ss Richlik는 영국에 기반을 둔 폴란드 태생의 사진과 영화 작업을 하는 비주얼 예술가이다. 그녀는 심한 근시에도 불구하고, 10대 초반부터 시각적 스토리텔링에 전념해 왔다. 표지 사진은 <대자연(Mother Nature)>인데, 자선행사에 내놓은 것으로 수익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를 돕기 위해 기부했다. Iness Richlik는 고통, 고독, 취약성의 주제를 탐구하는 어두운 초현실적 자화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즉 어두운 개념의 에로티카로 유명하다. 그녀는 성욕과 잔인함을 미묘하게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있다. 작품의 모든 모티브는 스스로의 몸을 활용한다. 아래의 작품 <미묘함의 한계(Granice Subtelności)>는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쇠옷걸이의 걸쇠 부분으로 자궁을 찔러서 낙태를 하는 것을 형상화하여 폴란드의 낙태 금지로 인한 여성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만성적인 피부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이네스는 자신의 몸을 예술적 표현의 캔버스로 사용한다. 그리하여 고통, 고독, 폭력이라는 강력한 주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란 것에 대해 종종 반성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한다. 그녀의 작품은 미묘한 우아함과 잔인함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작품의 기저에 독특한 아우라를 나타낸다. 그녀의 개념적인 사진들은 시청자의 상상력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자극한다. 그녀의 사진은 도발적이며,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아래 작품은 왼편은 <제작자(The maker)>, 오른편은 <경배(Adoration)>이다. 묘하게 에로틱한 구석이 있다. 석고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만드는 것 같은데, 손의 방향이 아주 묘해서 요즘 많이 쓰는 용어인 "나쁜 손"이다. 작품 <경배>는 무얼 경배하는가? 여체의 은밀한 곳을, 아니면 여체의 아름다움을, 아니면 은밀한 유혹을? 맨 아래의 마지막 작품도 끔찍한 모양이다. 제목 자체도 <어이쿠(Crumbs)>다. 이 정도면 심장 약한 사람은 감상하자 마시길 권한다. 의외로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에서 잔인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