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상인의 방에 들어가서 지은 것이다. 처마 앞에 있던 꽃이 아침 비에 젖은 이후로 저물어서도 꽃에 더해진 것이다. 80살의 오의 노승이 익힌 깨를 먹으며 입정하고 몇 시간 만에 다시 출정하고, 출정한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입정하는 까닭으로 이 중이 수도에 마음이 잠기어 들보 위의 제비가 가사의 옷자락을 더럽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위의 두 구절은 꽃이 더하고 노승이 깨를 먹는 것을 말했고, 아래 두 구절은 입정과 출정에 제비가 옷을 더럽히는 줄도 모른다는 말을 하였다.
* 이익(李益) : 748-827. 당나라 중당기의 시인이다. 자는 군우(君虞), 롱서고장(隴西姑藏)(감숙성무위/甘肅省武威) 사람이다. 769년에 진사가 되고, 정현(鄭縣)의 위(尉)가 되었으나, 별로 출세를 못하다가 후에 비서소감(秘書少監),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했다.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시는 되자마자 가인(歌人)들이 다투어 노래로 부르기 위해 사려고 했다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유행가 작사자이다. 그는 특히 질투심이 강하였기 때문에 <투치상서(妬癡尙書)>라 했고,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이 있어서 구분하기 위하여 문장이익(文章李益)이라고도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