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뜰의 꽃은 이슬에 젖어 이미 은택을 입을 수 없고, 봄 궁전에 향기 피어나지만 장문궁엔 홀로 수심에 쌓인 적막함을 감수하니 모두 원한의 단서이다. 밤이 깊으니 이슬이 내리고 달이 밝았다. 이에 따라서 밝은 달 아래 기대서서 듣는 것이다. 밤이 고요하고 바람이 맑아 노래 부르는 소리가 소양궁 안에서 전해오니 어찌 죽임을 원망하지 않겠는가? 쓸쓸한 밤에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어 한 시각 시각마다 생각에 슬픈 감정을 일으키고, 한 소리 소리에 밤 길고 시각이 멀어 들으면 들을수록 길게 느껴져 바닷물을 더하는 것과 마찬가지 같은 것이다.
이란의 물시계법에 의하면 그릇에 물을 담고 동으로 물이 마르도록 하여 (관을 만들되) 새가 갈고리 같이 구부린 것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서 그릇 안의 물을 은으로 만든 용의 내부로 이끌어내어 용의 입으로 토하여 그릇에 들어가도록 하여 물이 한 되 정도 새어나와 저울을 한번 움직이게 하면 시간이 일각(15분)이 지나는 것이다. 장문궁은 이궁의 이름이다. 진황후가 강등됐을 적에 살던 곳으로 장문의 물시계가 다른곳에 비교하면 시간이 긴 것 같으니, 지금 마치 바닷물을 가지고 물시계의 물로 써서 똑같이 떨어져도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익(李益) : 748-827. 당나라 중당기의 시인이다. 자는 군우(君虞), 롱서고장(隴西姑藏)(감숙성무위/甘肅省武威) 사람이다. 769년에 진사가 되고, 정현(鄭縣)의 위(尉)가 되었으나, 별로 출세를 못하다가 후에 비서소감(秘書少監),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했다.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시는 되자마자 가인(歌人)들이 다투어 노래로 부르기 위해 사려고 했다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유행가 작사자이다. 그는 특히 질투심이 강하였기 때문에 <투치상서(妬癡尙書)>라 했고,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이 있어서 구분하기 위하여 문장이익(文章李益)이라고도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