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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Aug 18. 2024

15. 사비니 여인들의 강간에서 보는 애로서(曖露書)

로마의 전설적인 집단 만행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사비니(Sabinae) 여성 납치는 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 건국 직후인 로마 초기 역사에서 일어났다. 로물루스와 그를 추종하는 남성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도시 건국 이후 인구는 라틴계와 다른 이탈리아계로만 이루어졌는데, 특히 남자 도적들로 구성되다 보니 결혼할 여성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원로원의 조언에 따라 로마인들은 가정을 꾸릴 아내를 찾아 주변 지역으로 출발했다. 로마인들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비니족을 포함해 여러 민족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이에 로마인들은 넵튠 에퀘스터(Neptune Equester) 축제 기간 동안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축제에 참석한 사비니 여인들을 로물루스의 지시에 따라 납치하여 강간하고 결혼을 한 것이다.

Mikele Arapi의 작품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 그림을 어디서 봤다고 생각할 거다. 맞다. 바로 다음 번에 게재할 페테르 루벤스의 <레우키푸스 딸들의 강탈> 그림이다. 그냥 복사판이라고 하면되겠다. 화가 아르피는 이 그림의 왼쪽 아래에 루벤스의 작품을 그린 것이라고 깨알같이 표시를 해 놓았다. 그는 알바니아 출신으로 이 작품에서 사비니 여인들의 나신을 루벤스 보다 더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등을 보이고 있는 여인의 등근육과 엉덩이 근육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근육으로만 보았을 때는 남자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루벤스의 그림은 약간 부드러운 여인의 몸매가 살아있는데, 아르피의 그림은 근육의 미세한 떨림이 보이는 듯하다. 두 그림을 잘 비교해 보시라.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와 강간에 대한 주제는 르네상스 이래로 수많은 화가나 조각가들의 단골 메뉴였다. 특히 유명한 조각 작품도 많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의 험상궂은 얼굴이 형상화되어 있고, 공포에 질린 사비니 여인들의 고통과 절규가 그림 속에서 메아리쳐 오는 것 같다. 말발굽에 유린당하는 가녀린 나신의 하얀 엉덩이와 맨발이 너무나 가슴을 쓰리게 하는 구도이다. 드러난 젖가슴을 막 유린하려는 나쁜 손길도 매우 감각적이다.

강간이나 겁탈에 대한 무수한 작품이 있지만 생략하고 루카 죠르다노(Luca Giordano)의 작품으로 하나 올린다. 비교적 나신을 많이 활용하지 않고 옷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이다. 강간을 주제로 하는 그림의 대부분이 벗은 여인이 기본인데 이 작품은 예외이다. 그러나 그도 아래의 그림 <루크레티아의 강간>에서는 벗은 여인을 그렸다. 한 팔로 완강히 거부하는 애처로운 여인의 모습에 대비되어 뒤쪽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흑인 여인의 표정이 짠하다. 방탕한 왕족 타르퀴니우스는 겁탈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주제도 많은 화가들이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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