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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Nov 03. 2022

(5) 로마 홍등가(紅燈街) 여왕 – 메살리나

★ 18禁 역사 읽기 ★ (221103)

로마제국(帝國)의 역사상 밤낮으로 괴기(奇怪)한 짓을 한 여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발레리아 메살리나(Valeria Messalina) 만큼 화끈하게 세상을 산 여자도 드물 것이다. 그녀는 BC 20년에 로마의 명문 귀족(貴族) 가문(家門)에서 태어나서 16세에 34살 차이 나는 로마 황제(皇帝) 클라우디우스랑 결혼을 하여 대박 신델레라가 된다. 황후(皇后)가 된 후에 정말 막장 인생을 살아서, 로마 역사상 쌍벽(雙璧)을 이루는 두 여자 중의 한 명이다. 경쟁 상대는 소(小) 아그리피나로 자기와 동서(同壻)이며, 안사돈(査頓)이다. 메살리나가 클라우디우스랑 아들 브리타니쿠스와 딸 옥타비아를 낳고 부정(不貞)한 행실로 28살에 살해된 후에 아그리피나가 자기 다음 황후가 되었으니 동서간(同壻間)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아그리피나의 아들 네로와 자기의 딸 옥타비아가 결혼을 하였으니 사돈(査頓) 관계도 되는 것이다. 본인의 모계로 따지면 아그리피나는 외숙모(外叔母)에 해당되고, 네로는 자기와 사촌(四寸) 관계이다.

<칼리굴라와 메살리나 영화 포스터>

메살리나는 선천적으로 탐욕(貪慾)과 음욕(淫慾)이 많았는지 모르지만, 젊고 한창 꽃다운 혈기 왕성(旺盛)한 나이에 황제 계승자(繼承者)라지만 늙다리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에 비해 남편 클라우디우스는 로마 4대 황제 계승 순위 1번 카드라는 비까번쩍하는 명함(名銜)만 있지 한마디로 찌질이다. 클라우디우스는 역대(歷代) 로마 황제를 다수 배출한 뼈대 있는 가문(家門) 출신인데, 어릴 때 소아마비(小兒痲痺)를 앓던 중 녹용(鹿茸)을 잘못 먹어서 그런지, 총명탕(聰明湯)에 식중독(食中毒) 되어 그런지 정신이 비리비리했단다. 오죽하면 로마 사람들 사이에 바보들을 놀릴 때 "저놈은 클라우디우스보다도 훨씬 바보"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단다.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미세(微細)한 말 더듬 증세(症勢)를 가지고 있었다.


이놈이 부인과 두 번째 이혼(離婚)하고서, 나이 50에 세 번째 결혼하게 되는 젊은 여자가 바로 메살리나였다. 이때 이 여자의 나이가 16살이라니, 요즘으로 치면 미성년자 약취(略取) 성매매죄(性賣買罪)로 처벌받기 딱 좋은 그림이다. 나이 차이가 무려 34살이니 완전히 요즘의 원조교제(援助交際)의 전형(典刑)이다. 그러니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어벙한 황제에 비해 메살리나는 요염(妖艶)하기 그지없는 미모와 쭉쭉빵빵한 몸매는 물론 아첨(阿諂) 도사인 데다 머리까지 영민(英敏)해서 남편은 이 여자 말이라면 껌뻑 넘어간다. 자연히 메살리나 말은 곧 황궁(皇宮)의 법이 되는 판국이었다. 더구나 왕손을 이을 아들 부리타니쿠스를 낳은 다음부터는 숫제 그녀가 황제의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하게 된다. 황제의 눈과 귀를 가려놓고 신하들은 죄다 자기편으로 만든 그녀는 남편과의 밤 생활을 접고, 힘 좋고 기술 좋은 남자 사냥에 나선다.

천성(天性)이 질척 질척한 이 여자는 늙은 남편 하나로는 도저히 만족을 못하겠던지 슬슬 마수(魔手)를 뻗어 주변 남자들을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따르면, 현대 이탈리아어에서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아무 남자와 동침(同寢)하는, 몸가짐이 헤픈 여자”의 대명사(代名詞)로 쓰인다고 했다. 젊은 나이로 일약(一躍) 로마제국의 황후가 된 메살리나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명예(名譽)와 부를 한 손에 넣게 되어 너무나 기뻤지만, 남편이 하루 종일 국사(國事)나 취미 생활에만 열중하는 바람에 늘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소일(消日) 거리를 찾아야 했던 그녀는 밤마다 궁정(宮廷)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파티에는 말주변이 좋은 귀공자(貴公子)들과 용모가 뛰어난 남자 배우(俳優)들이 주로 초대되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귀공자나 배우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서로 눈길이 맞으면 황궁의 은밀(隱密)한 방에 잠자리까지 끌어들여 농밀(濃密)한 밤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편의 외도(外道)는 결코 용납(容納)하지 않았다. 남편이 친절하게 대하는 칼리쿨라의 여동생이자 남편의 조카인 율리아에게 모반죄(謀叛罪)를 뒤집어 씌워 살해해버렸으며, 기타 여러 여자들을 반역죄(反逆罪)라는 누명(陋名)을 씌워 죽여 버렸다. 그러는 중에도 그녀는 애인을 수시로 바꿔가며 마음껏 정욕(情慾)을 채웠다. 그 상대가 미남(美男)이라면 귀족이든, 배우든, 총각이든, 유부남이든 가리지 않았다. 만약에 메살리나의 유혹(誘惑)을 거절하는 남자는 무슨 수를 쓰더라고 반역죄나 간통죄(姦通罪)로 다스렸다. 그 당시 로마는 반역이나 간통을 하면 사형(死刑)에 처하거나 전 재산을 몰수(沒收)하는 법이 있었는데, 무슨 말이든 잘 듣는 황제를 구워삶아서 처형(處刑)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의 청을 거역(拒逆)하지 못했다.


어느 날 메살리나는 자신을 보고자 어머니와 함께 궁정에 들린 의붓아버지 아피우스 시라누스를 보게 되는데, 탄탄한 구릿빛 피부 하며 서글서글하게 자리 잡은 주름과 형형(炯炯)한 갈색 눈동자에 메살리나는 껌뻑 반하게 되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술에 취해 잠들어있던 아피우스 시라누스의 방으로 그녀가 몰래 숨어 들어간다. 이붓 아버지를 손보려는 것이다. 아피우스 시라누스가 잠결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품속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메살리나가 안겨서 그녀 특유의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과 수염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시라누스는 깜짝 놀라 메살리나를 밀쳐냈다. 메살리나는 그렇게 발가벗은 채 침대 아래로 내동댕이쳐졌다. 시라누스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어머니가 잠들어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할 수 없이 자신의 침실(寢室)로 돌아와 자신이 처음으로 거절(拒絶) 당했다는 수치심(羞恥心)에 몸을 떨며 복수(復讐)하고자 다음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에 득달같이 황제에게 달려가 자신의 의붓아버지가 모략(謀略)을 꾸미고 있다고 모함(謀陷)한다. 결국 황제는 메살리나의 말만을 믿고 그녀의 의붓아버지를 바로 죽여 버린다. 그녀의 교활(狡猾)함은 나날이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방탕(放蕩)함을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선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같이 망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애꿎은 귀족부인들에게 억지로 매춘(賣春)을 시키기 시작한다. 이걸 거부하면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노예들을 불러들여 그녀들의 남편 앞에서 능욕(凌辱) 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메살리나는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힘센 남자 노예들을 비서(祕書)로 두고 갖은 방법으로 즐기면서도 도저히 만족이 안됐던지 아예 로마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588 홍등가(紅燈街)에 전용 룸을 개설했다. 그 룸 이름은 “류키스카”라고 하면 출입문에는 남성의 성기 (性器)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달아 놓았다고 한다. 밤이 되면 남편이 잠든 뒤 그녀는 베일로 머리와 얼굴을 감추고서 노예(奴隸) 하나만 거느리고 궁전(宮殿)을 그림자처럼 빠져나갔다. 이곳에 가서 누구에게나 몸을 맡기며 밤새워 탐닉(耽溺)했다. 남자의 정액(精液)과 새벽이슬을 실컷 맞으면서 게슴츠레한 몰골로 황궁으로 되돌아와서 황제 곁에 누웠다고 기록돼 있다.


한 때 조선반도에 벤처 붐으로 들끓어 오를 때 강남에는 강아지들도 5만 원짜리 지폐(紙幣)를 물고 다니고, 개도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듯이, 로마에서 한 인물 하거나 쫌 놀아 본 놈 치고 메살리나와 하루 저녁 보내지 못했다면 "오천만의 호구리우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로마의 증권(證券) 찌라시에는 연일 메살리나의 주가(株價)가 대서특필(大書特筆)되고 있었지만 남편인 클라우디우스만 찌라시를 “가짜뉘우스”라 우기면서 무시해서 메살리나의 행적(行蹟)을 모르고 있었다. 로마의 뚜껑 열리는 유명한 나이트클럽 댄서인 네스타와의 관계도 웃긴다. 이놈은 무용수(舞踊手) 답게 주특기가 브레이크 댄스와 비보이 댄스 등 인 만큼 몸놀림이 얼마나 현란(絢爛)하겠는가. 그러니까 잠자리에서도 현란한 테크닉과 육중한 몸통 스윙, 체중이동, 공중 부양(浮揚) 등 다양한 기술을 맘 껏 구사해서 메살리나를 홍콩으로 보내주곤 했단다. 허리가 시큰시큰하고 뼈가 녹진녹진하도록 그놈에게 푹 빠진 그녀는 황궁 곳곳에 네스타의 동상(銅像)을 세우고 흐뭇해했다니 가관(可觀)이다.

점점 겁 대가리가 없어진 그녀는 드디어 제 무덤을 파는 황당(荒唐)한 짓을 하기 에 이른다. 자신에게 남편이 두 명 있어서 안 될 게 뭐 있냐는 망상(妄想)을 하게 된 것이다. 눈알을 반짝반짝 빛내며 제2의 남편감을 찾는 그녀에게 걸려든 남자는 바로 집정관(執政官) 가이우스 시리우스였다. 이놈은 월간지(月刊誌) “여성 로마”와 “패션 로마”, “팜므 아테네”등이 뽑은 “올해의 섹시가이”과 “가장 뇌섹남”“최고의 무드남” 등에 몇 년간 줄곧 톱을 달리는 놈이다. 이놈 얼굴만 봤다 하면 로마의 오빠 부대들만이 아니라 이집트, 아랍에서까지 집단(集團)으로 아미를 만들어 찾아와서 오줌을 질금질금 싸 대는 바람에 로마의 하천이 오염(汚染) 돼버려 환경부의 집중 성토(聲討)를 받는 놈이다. 월간 잡지를 보고 이놈의 존재를 알게 된 메살리나가 모든 오빠 부대들을 제치고, 황후라는 장미 빛 카드를 제시하면서 질펀하고도 끈적한 유혹(誘惑)을 하는 거다. 어쩌면 이것이 그녀의 인생에 반전(反轉)이 일어나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메살리나는 어느 날 멀리서 집정관 가이우스 시리우스를 보게 되는데, 잘 생기고 훤칠한 그를 보는 순간 한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이상형(理想型)을 만난 그녀는 자신이 즐겨오던 음란(淫亂)한 파티와 매춘(賣春)도 중단하고, 밀애(密愛)를 즐기던 은밀한 방도 폐쇄(閉鎖)해버린다. 처음 느껴보는 그 격한 감정에 그녀는 온전히 그를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싶다는 생각 외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진 시리우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이미 하늘을 날게 되었다.


드디어 기회를 잡아 그녀는 시리우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자, 시리우스는 한수 더 떠서 “오! 메살리나. 나의 마음엔 방이 오직 하나뿐, 당신의 사랑을 나만이 독(獨) 차지하고 싶다오. 당신의 사랑을 클라우디우스와 나눠가지라 하니, 이 얼마나 가혹(苛酷)한 형벌(刑罰)이란 말이오. 자, 사랑하는 그대여. 나인지 아니면 왕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라고 한다. 그러자  메살리나 묘책(妙策)을 내고 “좋아요. 황제는 곧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하죠. 당신이 먼저 이혼(離婚)을 하세요. 단, 황제가 떠나기 전에 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황제가 떠나는 날부터 우리의 결혼식을 준비하겠어요. 난, 황후로써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그럼 당신은 자연히 황후의 남편이 될 테고, 클라우디우스가 돌아왔을 때 그는 그저 힘없는 늙은이일 뿐이죠. 그럼 난 내 아들 브리타니쿠스를 황제로 즉위시키고 당신과 섭정(攝政)을 하면 돼요. 그럼 로마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당신 또한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라고 말한다.


시리우스는 그녀의 말에 따라 마누라와 이혼하게 되고, 클라우디우스가 지방으로 출정(出征)을 나간 사이, 둘은 황궁에서 정말로 아주 성대(盛大)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뿐만 아니라 로마 시내의 귀족들을 초대해 며칠 동안 축하 공연(公演)을 펼치면서 졸지에 시리우스를 황제처럼 떠받들게 하니 로마 황실은 개판이 된다. 그러나 한 원로(元老)가 지방으로 출정 나가 있던 클라우디우스에게 보고를 했다. 메살리나 황비의 별별 음탕(淫湯)한 짓거리를 무수히 보아 넘긴 귀족들이지만 이번의 결혼식만큼은 도저히 봐줄 수 없었는지, 신하 중 한 명이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린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디우스는 어벙하게 가짜뉴스라고 우기면서 믿지 않는다. 그러자 그 동안의 황실 안에서의 엽색(獵色) 행각(行脚)을 담은 동영상(動映像)도 함께 황제에게 공개한다. 쪼다 황제는 처음에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이거 합성(合成) 포르노 아냐?" 하며 믿지 않는 눈치였다. 파파라치의 사진, 동료 매춘부의 증인 대질(對質), 현장 목격자(目擊者)의 제보, 류키스카 매춘방을 이용한 고객 수첩 공개, 음란(淫亂) 물품 거래상의 제보(提報), 매니저의 고백, 588 홍등가 번영회 회장 등의 증언이 추가로 공개되었다. 특히 588 홍등가 지역 관한 경찰서 여자 서장인 강자리우스의 순찰(巡察) 일기와 그곳의 CCTV 영상 기록이 결정적 단서로 제공되자 황제도 별 수 없이 믿게 된다.  극도(極度)로 화가 난 황제가 로마로 복귀하게 된다. 원로들은 그 둘을 극형(極刑)에 처해야 한다고 매일 황제에게 상소(上訴)를 올리고, 황제도 이번만큼은 메살리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우선 시리우스를 극형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메살리나도 같이 죽이라는 원로들의 요청을 자꾸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자, 메살리나는 평소 가장 좋아하고 아끼던 밀회(密會) 장소인 루쿨루스 별장(別莊)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메살리나는 매일 서찰(書札)을 보내 클라우디우스에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간곡(懇曲)히 빈다. 이에 황제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측근들 몇몇이 루쿨루스 별장으로 찾아가고 그녀와도 동침한 적이 있는 나르키스가 그녀가 잠든 침실로 몰래 침입한다. 메살리나는 놀라서 반라(半裸)의 몸으로 나르키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빌었다. 그녀의 가증(可憎)스러운 모습에 치를 떨며, 나르키스는 칼을 뽑아 그녀의 가슴에 비수로 꽂았고, 29살의 꽃다운 짧은 그녀의 생은 이렇게 마감하게 된다. 나르키스는 원래 메살리나의 정부(情夫)였으나, 메살리나가 자신을 버리고 시리우스를 택한 것에 질투(嫉妬)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질병(疾病)의 일종인 여성색정증(女性色情症 : Nymphomania)에 걸린 가련(可憐)한 한 여인의 어이없는 최후였다. 여성색정증은 성중독증(性中毒症)의 일종으로 비정상적인 성욕항진증(性欲亢進症)을 말한다. 남성의 경우에는 색광증(色狂症 : Satyriasis)라 부른다. 님포매니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님프(Nymph)에서 유래(由來)되었고, 사티리아시스는 신화에서 사람의 얼굴에 염소 뿔이 나고, 몸통은 사람이나 다리는 염소인 사티로스(Satyros)에서 유래된 것이다.


메살리나로 대변(代辨)되는 로마 제국의 성적(性的) 타락상(墮落狀)은 19세기 말 미술가들의 흥미를 강하게 자극했는데, 로마의 퇴폐적(頹廢的)이고 방탕(放蕩)한 성풍속은 에로틱한 자극(刺戟)을 원하는 사람들의 은밀(隱密)한 욕망(欲望)을 만족시키면서도 도덕성의 시비(是非)는 피할 수 있어 화가들과 소장가(所藏家)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희대(稀代)의 창부(娼婦) 메살리나의 문란(紊亂)한 남성 편력(遍歷), 낮에는 고귀한 황후요, 밤에는 비천(卑賤)한 매춘부인 이중생활, 불같이 사랑에 빠져 부나방처럼 파멸(破滅)을 자초(自招)한 드라마틱한 일생은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악마(惡魔)나 요부(妖婦)의 이미지에 매료(魅了)된 귀스타브 모로가 관능적(官能的)인 메살리나를 그리면서 창작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는 메살리나를 살로메와 쌍벽을 이루는 악독(惡毒)한 여인의 전형(典型)에서 에로티시즘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요부의 전형을 창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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