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여주에 이르는 도중에 지은 것이다. 파주 길이 멀어 구름 사이에 있다. 한식절에 집에서 출발하여 보리가 익을 적에 돌아온 것이다. 날이 저무는 가운데에 몇 봉우리의 푸른색이 물들인 것 같으니, 상인이 이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몇 봉우리 푸른 것은 여주의 산이다.”라고 말할 뿐이더라. 한식이 보리 익을 때와의 기간은 거슬러 3개월에 불과하다.
* 王建(왕건) : 당나라 영천(穎川) 사람. 자는 중초(仲初)다. 집안이 영락하여 어린 나이에 위주(魏州)에서 살았다. 헌종(憲宗) 원화(元和) 때 처음으로 벼슬하여 소응현승(昭應縣丞)이 되었다. 태부시승(太府寺丞)과 태상시승(太常寺丞), 비서승(秘書丞)을 역임했다. 代宗(대종) 大曆年間(대력연간, 766~779)에 渭南尉(위남위), 문종(文宗) 대화(大和) 연간에 섬주사마(陜州司馬)로 나가 왕사마(王司馬)로도 불린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함양(咸陽)에 은거했다. 일생을 한직(閑職)에서 불우하게 지냈다. 악부시(樂府詩)에 능해 장적(張籍)과 이름을 나란히 해서 ‘장왕악부(張王樂府)’라 불렸다. 하층 민중들의 생활상을 시로 노래했다. 특히 궁사(宮詞) 100 수가 있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다. 문집에 『왕사마집(王司馬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