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천자가 헌책사에 임한 것을 말했다. 곤의는 천자의 옷이다. 조정에 들어가 대책을 올릴 적에 천자의 용안을 우러러보니 마치 해와 달 같이 밝았다. 궁궐의 붉은 섬돌에서 대책을 지을 적에 시위무사의 깃발 그림자가 벼루의 먹물 속에 흔들리는 것이 마치 용과 뱀이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종횡으로 흐르는 예악은 임금 앞에서 대책을 지을 적에 하는 말이 모두 예악형정의 대강이었으니 그 글자가 삼천 자였다는 말이다. 대궐의 붉은 섬돌 아래에서 천자와 독대하여 글을 이루었는데 아직 해가 기울지 않았다. 송나라 때에 천거된 자를 헤아리는 때가 있어서 대책이 뜻에 걸맞은 자는 특별히 진사급제를 하사한 때문에 독대라고 말한 것이다.
* 王建(왕건) : 당나라 영천(穎川) 사람. 자는 중초(仲初)다. 집안이 영락하여 어린 나이에 위주(魏州)에서 살았다. 헌종(憲宗) 원화(元和) 때 처음으로 벼슬하여 소응현승(昭應縣丞)이 되었다. 태부시승(太府寺丞)과 태상시승(太常寺丞), 비서승(秘書丞)을 역임했다. 代宗(대종) 大曆年間(대력연간, 766~779)에 渭南尉(위남위), 문종(文宗) 대화(大和) 연간에 섬주사마(陜州司馬)로 나가 왕사마(王司馬)로도 불린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함양(咸陽)에 은거했다. 일생을 한직(閑職)에서 불우하게 지냈다. 악부시(樂府詩)에 능해 장적(張籍)과 이름을 나란히 해서 ‘장왕악부(張王樂府)’라 불렸다. 하층 민중들의 생활상을 시로 노래했다. 특히 궁사(宮詞) 100 수가 있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다. 문집에 『왕사마집(王司馬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