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시를 지어 부친 것이다. 오도계곡 머리에 철쭉 꽃이 한창 피어 현란하게 붉은데, 숭양사 안에서의 강론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행하는 즈음에도 반드시 들렸으리라. 봄바람 부는 산중에 이르는 곳마다 꽃다운 풀이 아닌 것이 없어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좋음과 감상하는 흥취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한 달 사이에 꽃구경 행차로 다녀본 것이 모두 몇 봉우리나 되는가. 오도계는 이 계곡의 이름이니, 이 계곡을 5번 통과했다는 것은 아니다. 척촉은 동방에서 말하는 철쭉이니, 백화가 다 지고 푸른 잎이 그늘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붉음을 방출하는 것이다. 숭양사는 사찰의 이름이다. 이발이 붉은 철쭉꽃을 보고 올라 봄 산에 임하니 반드시 한 달을 다 써서 몇 개의 봉우리나 이르렀는가라는 말이다.
* 張籍(장적) : 768년 출생 – 830년 사망 추정, 자는 文昌(문창)이고, 中唐(중당)의 문관, 시인. 河北省 濮陽(하북성 복양) 사람이다. 進士(진사)에 급제하여 韓愈(한유)의 천거로 國子博士(국자박사)가 되었고, 國子司業(국자사업)을 역임했다. 古詩(고시)와 書翰, 行草(서한, 행초)에 능했고, 樂府(악부)에도 능하여 王建(왕건)과 이름을 같이했다. 한유에게 ‘노름을 즐기고 남에게 이기려는 승벽이 세며 老佛(노불)을 배척하여 미움을 받으니 맹자처럼 글로 후세에 남기지 못하리라.’는 신랄한 편지를 보낸 바가 있으며 ‘張司業詩集(장사업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