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낙양에서의 오랜 객지생활에 바로 가을바람을 대하니 고향이 다른 때보다 갑절이나 생각나는데, 마침 고향 가는 인편이 있어 편지를 쓰려하지만 마음속에 천만 갈래 생각이 몇 번이나 거듭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가서를 단단히 봉해서 주고는 다시 생각하여 말하기를 바쁜 까닭에 혹시 다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인편이 출발할 즈음에 봉했던 편지를 다시 열어 보는 것이니 나그네의 마음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 네 구절은 나그네의 감정을 묘사해 낸 것이 간절히 얽혀 있다.
* 張籍(장적) : 768년 출생 – 830년 사망 추정, 자는 文昌(문창)이고, 中唐(중당)의 문관, 시인. 河北省 濮陽(하북성 복양) 사람이다. 進士(진사)에 급제하여 韓愈(한유)의 천거로 國子博士(국자박사)가 되었고, 國子司業(국자사업)을 역임했다. 古詩(고시)와 書翰, 行草(서한, 행초)에 능했고, 樂府(악부)에도 능하여 王建(왕건)과 이름을 같이했다. 한유에게 ‘노름을 즐기고 남에게 이기려는 승벽이 세며 老佛(노불)을 배척하여 미움을 받으니 맹자처럼 글로 후세에 남기지 못하리라.’는 신랄한 편지를 보낸 바가 있으며 ‘張司業詩集(장사업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