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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聽舊宮人穆氏歌(청구궁인목씨가)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2)

by 금삿갓

聽舊宮人穆氏歌(청구궁인목씨가) / 옛 궁인 목씨의 노래 듣고서

- 柳禹錫(유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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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隨織女度天河

증수직녀도천하

○○●●●○◎

일찍이 직녀 따라서 은하수 건너가


記得雲間第一歌

기득운간제일가

●●○○●●◎

구름 속에서 천하제일의 노래 얻었으니


休唱貞元供奉曲

휴창정원공봉곡

○●○○○●●

정원연간에 받들던 노래 부르지 말라.


當時朝士已無多

당시조사이무다

○○○●●○◎

당시의 조정의 관리들 다 죽고 없단다.

* 織女(직녀) : 직녀성.

* 度(도) : 건널 도(渡) 자와 같이 쓰인다.

* 天河(천하) : 은하수

* 貞元(정원) : 당(唐) 덕종(德宗)의 연호(年號)

此(차)는 德宗宮人穆氏而歌之於今日也(덕종궁인목씨이가지어금일야)라. 言此宮人(언차궁인)이 隨織女度天河而曾得第一歌曲也(수직녀도천하이증득제일가곡야)러니. 今日(금일)에 以感舊(이감구)로 偶爾發歌(우이발가)라. 貞元年間供奉曲(정원연간공봉곡)은 休唱之(휴창지)하라. 當時朝士(당시조사)가 飃零已盡(표영이진)하야. 所餘者不多(소여자부다)라. 上二句(상2구)는 言穆氏故事也(언목씨고사야)요. 下二句(하2구)는 言休唱貞元中歌也(언휴창정원중가야)라.

이 시는 덕종의 궁녀 목씨가 오늘에 노래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궁녀가 직녀를 따라 은하수를 건너서, 일찍이 제일가는 가곡을 얻었는데, 오늘 옛 감상으로써 우연히 이 노래를 한 것이다. 정원 연간에 받들던 노래는 부르지 말라. 당시의 조정 선비들이 회오리바람에 떨어지듯 이미 다 하여 남은 자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위 두 구절은 목씨의 고사를 말한 것이고, 아래의 두 구절은 정원 연간의 노래는 부르지 말라다.

* 劉禹錫(유우석, 772~842) : 당나라 중기 낙양인(洛陽人)으로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초(785)에 진사로 정계에 진출한 후,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 두우(杜佑, 735~812)의 막료가 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된 후에는 왕숙문(王叔文, 758~806) · 유종원 등과 함께 환관과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권력을 쇄신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왕숙문은 덕종 때 왕비(王 )와 더불어 태자의 독서를 맡은 동궁시독(東宮侍讀)을 지냈다가, 태자가 순종(順宗)에 즉위하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순종의 신임을 받은 왕숙문은 위집의(韋執誼)를 재상으로 추천하였으며, 또한 유우석과 유종원 등을 조정의 대신으로 기용해 개혁정치를 펼쳤다. 왕숙문이 어머님의 병환으로 물러난 지 146일 만에 환관 구문진(俱文珍)이 순종을 퇴위시키고 헌종(憲宗)을 옹립하면서 왕숙문은 투주사호참군(渝州司戶參軍)으로 쫓겨난 뒤 다음 해 피살되었다. 그 결과 유우석과 유종원도 헌종 영정(永貞) 원년(805)에 지방으로 쫓겨났다. 유종원은 영주(永州, 호남 영릉)로, 유우석은 낭주(朗州, 호남 상덕)로 좌천되었다. 유우석이 좌천되었을 때, 지방 관원은 그가 못마땅하여 숙소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세 번째 옮긴 숙소는 딸랑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누실명(陋室銘)>을 읊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한 물이지. 이곳은 누추한 방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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