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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蹋歌詞(답가사)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2)

by 금삿갓

蹋歌詞(답가사)

- 柳禹錫(유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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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江月出大隄平

춘강월출대제평

○○●●●○◎

봄 강에 달 떠올라 큰 뚝은 평평하고


隄上女郞連袂行.

제상여랑연몌행

○●●○○●◎

둑 위에는 처녀총각 손잡고 걷는구나.


唱盡新詞懽不見,

창진신사환불견

●●○○○●●

새 노래 다 부르도록 기쁨 보이지 않는데


紅霞映樹鷓鴣鳴.

홍하영수자고명

○○●●●○◎

붉은 노을 나무에 물들고 자고새 우네.

* 蹋歌詞(답가사) : 발로 땅을 구르며 장단을 맞추어 부르는 노래.

* 連袂(연몌) : 소매를 서로 붙잡고.

* 紅霞(홍하) : 붉은 노을

* 鷓鴣(자고) : 자고새

此(차)는 女郞(여랑)이 蹋而歌之之詞也(답이가지지사야)라. 言夜月(언야월)이 出於春江天則藹藹之中(출어춘강천즉애애지중)에 光彩(광채)가 可愛而大隄上(가애이대제상)에 女郞(여랑)이 連袂而行(연몌이행)하야. 唱盡新詞(창진신사)하니, 淸妙之曲(청묘지곡)이 足以懽心(족이환심)이나 然(연)이나 不可近見(불가근견)이요. 只是紅霞映樹鷓鴣鳴而已(지시홍하영수자고이이)니, 春夜(춘야)에 以卽景(이즉경)으로 紅霞鷓鴣(홍하자고)는 必未有也(필미유야)요. 此或女郞歌曲中(차혹여랑가곡중)에 有之者歟(유지자여)아. 未可的知也(미가적지야)로다.

이는 여인과 사내가 걸으며 노래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밤에 달이 봄 강의 애애한 가운데 떠오르니 광채가 사랑스럽고, 큰 제방 위에 남녀가 손을 잡고 걸으며 새 노래를 모두 부르니 청묘의 곡조가 마음을 기쁘기에 충분하지만, 그러나 가까이 보이지 않고 다만 붉은 노을만 나무에 비치고 자고새가 노래할 뿐이다. 봄밤에 풍경으로 붉은 노을이나 자고새는 꼭 있는 것은 아니니, 이것이 혹 남녀의 노래 속에 있는 것인가? 알 수가 없구나.

* 劉禹錫(유우석, 772~842) : 당나라 중기 낙양인(洛陽人)으로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초(785)에 진사로 정계에 진출한 후,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 두우(杜佑, 735~812)의 막료가 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된 후에는 왕숙문(王叔文, 758~806) · 유종원 등과 함께 환관과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권력을 쇄신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왕숙문은 덕종 때 왕비(王 )와 더불어 태자의 독서를 맡은 동궁시독(東宮侍讀)을 지냈다가, 태자가 순종(順宗)에 즉위하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순종의 신임을 받은 왕숙문은 위집의(韋執誼)를 재상으로 추천하였으며, 또한 유우석과 유종원 등을 조정의 대신으로 기용해 개혁정치를 펼쳤다. 왕숙문이 어머님의 병환으로 물러난 지 146일 만에 환관 구문진(俱文珍)이 순종을 퇴위시키고 헌종(憲宗)을 옹립하면서 왕숙문은 투주사호참군(渝州司戶參軍)으로 쫓겨난 뒤 다음 해 피살되었다. 그 결과 유우석과 유종원도 헌종 영정(永貞) 원년(805)에 지방으로 쫓겨났다. 유종원은 영주(永州, 호남 영릉)로, 유우석은 낭주(朗州, 호남 상덕)로 좌천되었다. 유우석이 좌천되었을 때, 지방 관원은 그가 못마땅하여 숙소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세 번째 옮긴 숙소는 딸랑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누실명(陋室銘)>을 읊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한 물이지. 이곳은 누추한 방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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