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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竹枝詞(죽지사) 4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3)

by 금삿갓

竹枝詞(죽지사) 4

- 柳禹錫(유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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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柳靑靑江水平

양류청청강수평

○●○○○●◎

버드나무 파릇파릇 강물은 잔잔한데


聞郎江上唱歌聲

문랑강상창가성

○○○●●○◎

강가에선 낭군의 노랫소리 들리네.


東邊日出西邊雨

동변일출서변우

○○●●○○●

동쪽에 해 떠있고 서쪽에 비 내리네


道是無情還有情

도시무정환유정

●●○○○●◎

무정하다 말하자니 도리어 정이 있네.

* 道是(도시) : ~라고 말하다. 말하자면 ~이다.

* 東邊日出西邊雨(동변일출서변우) : 동쪽에 해가 떠있고, 서녘에는 비가 온다는 것은 변덕이 심하거나 안정된 상태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이런 경우에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아마 정상적인 날씨가 아니라서 나온 말일 것이다. 낭군의 노랫소리를 듣고 느끼는 감정인데, 결구의 유정과 무정이 엇갈리는 심사이다.

此(차)는 竹枝詞四篇之終也(죽지사4편지종야)라. 江水平鋪(강수평포)하고, 楊柳(양류)는 靑靑嫋嫋(청청뇨뇨)하야. 拂于江頭而忽聞唱歌聲則乃是郞也(불우강두이홀문창가성즉내시랑야)라. 東邊(동변)에 日出(일출)하고, 西邊(서변)에 雨下(우하)하니, 無情(무정)을 是道(시도)나 還爲有情者也(환위유정자야)라. 上二句(상2구)는 言景色佳而聞歌也(언경색가이문가야)요. 下二句(하2구)는 言以東日西雨(언이동일서우)로 比之於男女之情而無情有情(비지어남녀지정이무정유정)으로 反覆之也(반복지야)라.

이는 죽지사 4편의 마지막이다. 강물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고, 버들은 파릇파릇 예쁘게 강 머리에 넘실대는데, 홀연 노랫소리가 들리니 바로 낭군이었다. 동편에 해 뜨고, 서편에 비 내리니, 무정함을 이에 말했지만 도리어 정이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위 두 구절은 아름다운 경치에 노랫소리 들린다는 말을 하였고, 아래 두 구절은 동에 해 뜨고 서에 비 오는 상황으로 남녀의 정에 대하여 유정과 무정으로 반복하여 비유한 것이다.

* 劉禹錫(유우석, 772~842) : 당나라 중기 낙양인(洛陽人)으로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초(785)에 진사로 정계에 진출한 후,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 두우(杜佑, 735~812)의 막료가 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된 후에는 왕숙문(王叔文, 758~806) · 유종원 등과 함께 환관과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권력을 쇄신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왕숙문은 덕종 때 왕비(王 )와 더불어 태자의 독서를 맡은 동궁시독(東宮侍讀)을 지냈다가, 태자가 순종(順宗)에 즉위하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순종의 신임을 받은 왕숙문은 위집의(韋執誼)를 재상으로 추천하였으며, 또한 유우석과 유종원 등을 조정의 대신으로 기용해 개혁정치를 펼쳤다. 왕숙문이 어머님의 병환으로 물러난 지 146일 만에 환관 구문진(俱文珍)이 순종을 퇴위시키고 헌종(憲宗)을 옹립하면서 왕숙문은 투주사호참군(渝州司戶參軍)으로 쫓겨난 뒤 다음 해 피살되었다. 그 결과 유우석과 유종원도 헌종 영정(永貞) 원년(805)에 지방으로 쫓겨났다. 유종원은 영주(永州, 호남 영릉)로, 유우석은 낭주(朗州, 호남 상덕)로 좌천되었다. 유우석이 좌천되었을 때, 지방 관원은 그가 못마땅하여 숙소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세 번째 옮긴 숙소는 딸랑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누실명(陋室銘)>을 읊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한 물이지. 이곳은 누추한 방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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