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7> 竹枝詞(죽지사) 3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3)

by 금삿갓

竹枝詞(죽지사) 3

- 柳禹錫(유우석)

KakaoTalk_20250109_221409842.jpg

山上層層桃李花

산상층층도리화

○●○○○●◎

산 위에 층층이 복사 오얏꽃 피고


雲間烟火是人家

운간연화시인가

○○○●●○◎

구름 사이 연기 나는 곳은 인가로구나.


銀釧金釵來負水

은천금차래부수

○●○○○●●

은팔찌와 금비녀 끼고 물을 이고 오고


長刀短笠去燒畬

장도단립거소사

○○●●●○◎

긴 칼 차고 단립 쓰고 화전 일구러 가네.

* 銀釧(은천) : 은 팔찌. 여자를 가리킴.

* 金釵(금차, 금채) : 금비녀. 여자를 가리킴.

* 短笠(단립) : 짧은 삿갓. 남자를 가리킴.

* 燒畬(소사, 소여) : 산의 잡초를 태워서 밭을 만든 것. 화전(火田).

此(차)는 峽中人家之象也(협중인가지상야)라. 言春來則山上層層之石間(언춘래즉산상층층지석간)에 桃花李花(도화리화)가 爛發(란발)하야. 春色(춘색)이 可愛(가애)요. 烟花繞於白雲間者(연화요어백운간자)는 乃是山中之人家也(내시산중지인가야)라. 此人家之人(차인가지인)이 女爲井臼之役(여위정구지역)하고 男爲稼穡之業(남위가장지업)이나, 然(연)이나 猶有盛飾侈靡之風(유유성식치미지풍)하야. 銀釧(은천)을 穿于臂(천우비)하며, 金釵(금차)를 橫于首者(횡우수자)는 負水之女也(부수지녀야)요. 長刀(장도)를 垂于腰(수우요)하며, 短笠(단립)을 戴于頭者(대우두자)는 燒畬之男也(소사지남야)니, 山中風俗(산중풍속)이 或有如此者耶(혹유여차자야)아. 只以歌曲(지이가곡)으로 述之耶(술지야)아. 未可强解(미가강해)이라.

이는 산골 인가의 형상이다. 봄이 오니 산 위에 층층이 바위 사이로 복숭아꽃, 오얏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빛이 아낄 만 하였다. 밥 연기와 붉은 꽃이 흰 구름사이를 두르고 있는 곳이 바로 산속의 인가이다. 이 인가의 사람들이 여인은 우물물 긷고 절구질하는 일을 하고, 남자는 심고 거두는 일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성대하게 꾸미는 사치하는 풍속이 있어 은팔찌를 팔에 차고, 금비녀를 머리에 가로 꽂고 물 긷는 여인이요, 긴 칼을 허리에 늘어트리고 단립을 머리에 쓰고 화전을 불사르는 남자들이다. 산속의 풍속이 혹 이와 같은 것이 있는가? 다만 가곡으로 기술한 것인가? 억지로 해석할 수 없다.

* 劉禹錫(유우석, 772~842) : 당나라 중기 낙양인(洛陽人)으로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초(785)에 진사로 정계에 진출한 후,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 두우(杜佑, 735~812)의 막료가 되었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된 후에는 왕숙문(王叔文, 758~806) · 유종원 등과 함께 환관과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권력을 쇄신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 왕숙문은 덕종 때 왕비(王 )와 더불어 태자의 독서를 맡은 동궁시독(東宮侍讀)을 지냈다가, 태자가 순종(順宗)에 즉위하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 순종의 신임을 받은 왕숙문은 위집의(韋執誼)를 재상으로 추천하였으며, 또한 유우석과 유종원 등을 조정의 대신으로 기용해 개혁정치를 펼쳤다. 왕숙문이 어머님의 병환으로 물러난 지 146일 만에 환관 구문진(俱文珍)이 순종을 퇴위시키고 헌종(憲宗)을 옹립하면서 왕숙문은 투주사호참군(渝州司戶參軍)으로 쫓겨난 뒤 다음 해 피살되었다. 그 결과 유우석과 유종원도 헌종 영정(永貞) 원년(805)에 지방으로 쫓겨났다. 유종원은 영주(永州, 호남 영릉)로, 유우석은 낭주(朗州, 호남 상덕)로 좌천되었다. 유우석이 좌천되었을 때, 지방 관원은 그가 못마땅하여 숙소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세 번째 옮긴 숙소는 딸랑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누실명(陋室銘)>을 읊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난 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한 물이지. 이곳은 누추한 방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6> 竹枝詞(죽지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