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揚州(양주) : 오늘날의 강소성(江蘇省) 강도현(江都縣). 당시에는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의 소재지였다. 역대 중국 도회지 중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여 풍류가 화려했던 곳이다. 두목은 대화(大和) 7년(833)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우승유(牛僧孺)의 막료로 장서기(掌書記)에 임명되어 대화 9년(835) 감찰어사(監察御使)에 제수되기까지 2년간 이곳에서 풍류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 韓綽(한작) : 자세한 인적사항은 전하지 않는데, 두목과 교유한 인물이다. 두목이 쓴 「곡한작)哭韓綽)」이란 시가 한 편 더 있다. 판관(判官)은 관찰사 또는 절도사에게 속한 관리로 당시 한작은 회남절도사 밑에서 판관으로 있었다.
* 隱隱(은은) : 아스라이 나타나는 모양. 흐리고 몽롱한 상태.
* 迢迢(초초) : 아득한 모습. 장강(長江)의 물이 길게 멀리까지 흘러가는 것을 가리킨다. ‘요요(遙遙)’로 쓴 자료도 있다.
* 二十四橋(24교) : 수(隨) 나라 때부터 강소(江蘇)성 양주(揚州) 수서호(瘦西湖)에 있는 다리(橋). <양주고취사(揚州鼓吹詞)> 서문에서 말하기를 “24교는 곧 오가의 벽돌다리인데, 일명 홍약교이고, 이 다리는 옛날에 미인 스물네 명이 피리를 불었다고 해서 이렇게 붙여진 이름이다(二十四橋卽吳家磚橋, 一名紅藥橋, 是橋因古二十四美人吹簫於此, 故名)”고 했다.
지리지인 <一統志(일통지)>에 양주의 24교는 부성에 있으니, 隋(수) 나라 적에 방시에 성문을 나란히 세우고, 이름 하였는데, 후에 한령곤이 주에 성을 쌓고 따로 다리를 세웠다. 24교라 말하는 것은 참고할 만한 것이 없다. 위 두 구절은 산은 은은하고 물이 아득하여, 강남에 가을이 다하여 초목이 시들고 낙엽 졌다는 말을 하였다. 아래 두 구절은 24교 달 밝은 밤에 그대는 어느 곳에서 퉁소를 불게 하는가라는 말을 하였다.
* 杜牧(두목) : 지금의 산시(陝西)성 성도(城都)인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경조(京兆) 만년(萬年) 출신이다. 자는 목지(牧之)라 했고, 호는 번천(樊川) 또는 번천거사(樊川居士)라 했다. 『통전』이라는 역사서를 남긴 재상 두우(杜佑)의 손자이기도 하다. 문종 대화(大和) 2년인 828년에 진사가 되어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郞)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일찍이 강서선흡관찰사(江西宣歙觀察使) 심전사와 회남(淮南) 절도사 우승유 밑에 들어가 감찰어사(監察御史)와 후베이성 황저우(黃州)와 안후이성 츠저우(池州), 저장성 목주(睦州) 등지의 자사를 지냈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다. 무종 회창(會昌) 연간에 고공낭중(考功郎中)과 지제고(知制誥, 국왕의 교서 작성직),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던 두목은 이상은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외에 「강남춘(江南春)」과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