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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龍池(용지)

금삿갓의 漢詩工夫(241004)

by 금삿갓

龍池(용지)

- 李商隱(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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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池賜酒敝雲屏

용지사주폐운병

○○●●●○◎

구름 병풍 펼치고 용지에 잔치 베풀어


羯鼓聲高衆樂停

갈고성고중락정

갈고 소리 높으니 뭇 악기 다 그치네.


夜半燕歸宮漏永

야반연귀궁루영

●●○○○●●

밤중에 연회에서 돌아와도 밤은 아직 길어


薛王沉醉壽王醒

설왕심취수왕성

●○○●●○◎

설왕은 깊이 취했으나 수왕은 술이 다 깨었네.

* 龍池(용지) : 당(唐) 현종(玄宗) 때에 융경궁(隆慶宮)에 있던 연못.

* 雲屛(운병) : 운모 병풍, 구름 모양 장식의 병풍

* 羯鼓(갈고) : 장구 비슷한 타악기의 일종인데 서역으로부터 전래되어 궁중에 쓰이다가 소멸되었다.

* 夜半(야반) : 밤중.

* 燕歸(연귀) : 연회에서 돌아오다. 燕(연)은 제비, 연나라, 잔치, 예쁜, 업신여김 등으로 쓰임다.

* 宮漏(궁루) : 궁궐의 물시계. 여기서는 시간을 나타냄.

* 薛王(설왕) : 당(唐) 현종(玄宗)의 동생인 이업(李業)의 아들, 즉 현종의 조카.

* 壽王(수왕) : 당(唐) 현종(玄宗)의 18번째 아들 이모(李瑁)이고, 양귀비(楊貴妃)의 첫째 남편임.

此(차)는 燕龍池也(연용지야)라. 羯鼓(갈고)는 玄宗(현종)이 偏好之(편호지)하야. 謂內侍曰(위내시왈) : “速令花奴(속령화로)로 持羯鼓來(지갈고래)하야. 爲我解穢(위아해예)”하며, 或自擊羯鼓也(혹자격갈고야)라. 宴於龍池而衆樂(연어용지이중락)은 停止(정지)하고, 只有羯鼓之聲而已(지유갈고지성이이)라. 夜半罷燕而歸則宮中之漏水(야반파연이귀즉궁중지루수)가 尙永(상영)하고, 薛王(설왕)은 沈醉(심취)하야. 尙在昏昏(상재혼혼)하고, 壽王(수왕)은 醉已醒矣(취이성의)라. 上二句(상2구)는 言設宴之樂也(언설연지락야)요. 下二句(하2구)는 言罷宴而歸也(언파연이귀야)라.

이는 연나라의 용지다. 갈고는 현종이 특히 좋아하여 내시에게 말하였다. “빨리 화노에게 명하여 갈고를 가져오도록 하여 나를 위하여 더러움을 해소하도록 하라.”혹은 스스로 갈고를 연주한 것이라 한다. 용지에서 잔치를 하여 많은 음악소리가 그치고, 다만 갈고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한밤에 연회를 끝내고 돌아오니, 궁중의 물시계가 아직도 멀었는데, 설왕은 매우 취하여 여전히 정신없고, 수왕은 술에서 이미 깨어났다. 위 2구는 잔치의 즐거움을 말했고 아래 2구는 연회를 끝내고 돌아온 것을 말했다.

* 花奴(화노) : 당 현종 때 여남왕(汝南王) 이진(李璡 : ?~750)의 아명(兒名)이다. 당녕왕(唐甯王)의 맏아들. 활쏘기를 잘하였고, 하지장(賀知章)과 시주(詩酒)로 교유함. 술을 좋아하여 ‘주중팔선인(酒中八仙人)’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갈고(羯鼓)를 잘 쳤는데, 이른 봄 버드나무, 은행나무에 꽃망울이 막 맺히려고 하는데, 당나라 현종이 잔치를 벌여 이진을 불러 갈고를 연주하게 했는데 한 곡을 마치자 꽃이 이미 활짝 피었다는 고사가 있음

* 李商隱(이상은) : 813년 ~ 858년(추정), 자는 의산(義山)이고, 호는 옥계생(玉溪生), 번남생(樊南生)이다. 허난(河南) 싱양(滎陽) 출신이다. 조부 이보(李俌)는 후베이(湖北)성 징저우(邢州)의 녹사참군(彔事參軍)을 지냈으며, 부친 이사(李嗣)는 중시어사(中侍御史)를 맡았다. 이상은이 태어날 때 부친은 가현령(嘉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때부터 가세가 몰락했다. 이상은은 10세에 아버지 이사를 병으로 잃었고, 그와 어머니, 동생들은 허난의 고향으로 돌아왔고, 빈곤하게 생활하며 친척들의 도움에 의존해 살아갔다. 이상은은 장자로서 집안을 지탱하는 책임을 졌다. 25세에 令狐楚(영호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進士(진사)가 되고 校書郎(교서랑), 東天節度書記(동천절도서기), 檢校工部郎中(검교공부낭중) 등 높지 않은 벼슬을 역임했다. 영호초의 반대파인 王茂元(왕무원)의 사위가 되어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하여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修辭(수사)를 중히 여기어 정밀하고 화려하다고 하며, 典故(전고)를 많이 인용했다. 시를 지을 때는 참고 서적이 자리를 꽉 차지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당 나라 말기와 五代(오대)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다. 溫庭均(온정균)과 함께 ‘溫李’로 불렸으며, 이들의 시파(詩派)를 西崑體詩派(서곤체시파)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杜甫(두보)의 전통을 이은 만당의 대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저서에 ‘義山詩集(의산시집 6권)’과 ‘西崑唱酬集(서곤창수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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