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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Nov 25. 2024

175> 題城樓(제성루) / 성루를 제목으로

漢詩工夫(241004)

題城樓(제성루) / 성루를 제목으로

 - 杜牧(두목)


鳴軋江樓角一聲

명알강루각일성

○●○○●●◎

강루에서 삐걱 울리는 뿔피리 한 소리


微陽瀲瀲落寒汀

미양렴렴락한정

○○●●●○◎

저녁 볕 넘실넘실 찬 물가에 떨어지네.


不用憑欄苦回首

불용빙란고회수

●●○○●○●

난간에 기대 애써 고개 돌릴 필요 없네.


故鄕七十五長亭

고향칠십오장정

●○●●●○◎

고향은 여기서 삼천리가 넘으니.

* 城樓(성루) : 성곽에 있는 누각이나 누대, 여기서는 제안성(齊安城)인데, 호북성(湖北城) 황주(黃州)의 옛 이름이다. 두목이 황주자사로 있을 때 쓴 것이다.

* 鳴軋(명알) : 부서지는 듯 들리는 소리, 흐느끼는 듯하는 소리. 시각을 알리는 호각 소리로 쓰인다.

* 微陽(미양) : 약한 햇볕으로 저녁 햇살임.

* 瀲瀲(렴렴) : 물이 넘치는 모양, 여기서는 잔물결이 일어나는 모양.

* 憑欄(빙란) : 난간에 기대다.

* 長亭(장정) : 옛날에는 도시 밖 길가에 10리 간격으로 정자를 설치하여 행인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친지들을 전별할 수 있도록 한 곳. 단정(短亭)은 5리마다 설치했다.

此(차)는登城樓而感懷也(등성루이감회)라. 言角一聲(언각일성)이 於江樓(어강루)에 聞之(문지)하니, 不勝思故鄕之愁而見依微之陽(불승사고향지수이견의미지양)이 瀲瀲(염렴)이 落於寒汀(낙어한정)하니, 客懷尤倍悲感(객회우배비감)하야. 故鄕之道路(고향지도로)가 有七十五長亭則山川之遠(유칠십오장정즉산천지원)을 可知而假令三十里(가지이가령30십리)에 有長亭(유장정)이면 七十五長亭(칠십오장정)의 里數(리수)가 二千二百五十里矣(이천이백오십리의)니, 憑欄回首於故鄕(빙란회수어고향)이나, 何可望之乎(하가망지호)아. 此歎之之詞也(차탄지지사야)라.

이는 성루에 올라 느낀 것이다. 뿔피리 한 소리를 강루에서 들으니 고향 생각에 향수를 이기지 못하여 희미한 빛에 의지해 바라보니, 넘실넘실 차가운 물가에 떨어지니 나그네의 회포가 갑절이나 더욱 슬피 느껴지니 고향 길은 75개의 장정이 있으니 산천의 먼 것을 알만하다. 가령 30리에 장정이 있다면 75장정의 거리는가 2,250리다. 난간에 기대어 고향으로 머리를 돌려보지만 어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는 이것을 탄식하는 말이다.

* 杜牧(두목) : 지금의 산시(陝西)성 성도(城都)인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경조(京兆) 만년(萬年) 출신이다. 자는 목지(牧之)라 했고, 호는 번천(樊川) 또는 번천거사(樊川居士)라 했다. 『통전』이라는 역사서를 남긴 재상 두우(杜佑)의 손자이기도 하다. 문종 대화(大和) 2년인 828년에 진사가 되어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郞)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일찍이 강서선흡관찰사(江西宣歙觀察使) 심전사와 회남(淮南) 절도사 우승유 밑에 들어가 감찰어사(監察御史)와 후베이성 황저우(黃州)와 안후이성 츠저우(池州), 저장성 목주(睦州) 등지의 자사를 지냈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다. 무종 회창(會昌) 연간에 고공낭중(考功郎中)과 지제고(知制誥, 국왕의 교서 작성직),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던 두목은 이상은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외에 「강남춘(江南春)」과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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