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성루에 올라 느낀 것이다. 뿔피리 한 소리를 강루에서 들으니 고향 생각에 향수를 이기지 못하여 희미한 빛에 의지해 바라보니, 넘실넘실 차가운 물가에 떨어지니 나그네의 회포가 갑절이나 더욱 슬피 느껴지니 고향 길은 75개의 장정이 있으니 산천의 먼 것을 알만하다. 가령 30리에 장정이 있다면 75장정의 거리는가 2,250리다. 난간에 기대어 고향으로 머리를 돌려보지만 어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는 이것을 탄식하는 말이다.
* 杜牧(두목) : 지금의 산시(陝西)성 성도(城都)인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경조(京兆) 만년(萬年) 출신이다. 자는 목지(牧之)라 했고, 호는 번천(樊川) 또는 번천거사(樊川居士)라 했다. 『통전』이라는 역사서를 남긴 재상 두우(杜佑)의 손자이기도 하다. 문종 대화(大和) 2년인 828년에 진사가 되어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郞)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일찍이 강서선흡관찰사(江西宣歙觀察使) 심전사와 회남(淮南) 절도사 우승유 밑에 들어가 감찰어사(監察御史)와 후베이성 황저우(黃州)와 안후이성 츠저우(池州), 저장성 목주(睦州) 등지의 자사를 지냈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다. 무종 회창(會昌) 연간에 고공낭중(考功郎中)과 지제고(知制誥, 국왕의 교서 작성직),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던 두목은 이상은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외에 「강남춘(江南春)」과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