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이태백이 장사로 귀양 갈 적에 악주 아래에 이르러 황학루에서 지은 것이다. 遷客(천객)은 귀양 관리가 먼 지방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黃鶴樓(황학루)는 신선 王子安(왕자안)이 황학을 타고 날아간 연고로 누각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落梅花(낙매화)는 피리 곡조의 이름이다. 이백이 귀양객이 되어서 이곳에 이르러 누각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고 잠깐 피리만 희롱하여 매화 한 곡조를 연주하여 가슴에 품은 사람에게 보내니, 또한 마침 5월의 계절이었다.
황학루 위에 있는 대를 ‘사(榭)’라고 하는데, 황학루의 4면에 ‘대사’를 갖추고 있어서, 이백이 이 시를 ‘북사’의 비에 지었고, 落梅花(낙매화)는 피리곡조다. 위의 2구는 한번 임금의 견책에 따라서 장사로 가는 길에 멀리 서쪽을 향하여 장안을 바라보니 집은 볼 수 없으니 심신이 슬프고 아프다는 말이다. 아래 두 구절은 이에 황학루에서 옥피리를 한번 불어 시험하니 5월의 매화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므로 분명 근심과 한스러움을 곡 중에서 논한 것이니, 이 곡을 들은 자 누군들 속상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 시는 건원(乾元) 원년(758)에 安祿山(안녹산)의 亂(난) 이후 李白(이백)은 永王(영왕) 璘(인)의 군대에 가담한 죄를 물어 長沙(장사)의 야랑(夜郎)으로 유배되어 무창(武昌)을 지나가다가 낭중(郎中)의 관직에 있던 사흠(史欽)과 함께 황학루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를 듣고 지은 시이다. 피리의 곡조 <매화락(梅花落)>을 듣고, 이미 5월이 지나 떨어져 없어진 매화를 자신의 처지와 비유한 것이다. 지덕(至德) 2년(757) 李白은 여산(廬山)에 있었는데,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막하(幕下)로 그를 불러들였다. 나중에 영왕(永王)의 반당군(叛唐軍)이 패하였고, 이백 또한 죄를 입어 심양옥(潯陽獄)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건원(乾元) 元年(758)에 일찍이 이린(李璘)을 섬겼다는 것 때문에 야랑(夜郞)으로 멀리 유배를 가게 되었고, 건원(乾元) 2년 봄여름 사이에 사면되어 돌아왔다. 황학루(黃鶴樓)는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 성 우한(武漢) 시의 양쯔강 강변에 있는 유명한 역사적 누각으로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삼대명루》의 하나로 손꼽힌다. 황학루에 관련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왕자안(王子安)이라는 선인이 학을 타고 내려왔는데, 이를 기념해서 황학루를 만들었다는 것과 비문의(費文禕)가 선인이 된 이후 황학을 타고 이곳에 내려와 종종 머물렀다는 전설 등이 있다. 황학루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그 천하절경을 노래했다. 역대 명사로는 최호(崔顥),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가도(賈島), 육유(陸遊), 양신(楊慎), 장거정(張居正) 등이 문예를 뽐냈으며, 그중 8세기의 유명한 시인 최호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위키백과>
* 李白(이백, 701년 ~ 762년) : 당나라 시대의 대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시가 남아 있다. 그의 시문학과 관련된 주제는 도교, 술 등이 유명하다. 두보가 지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李白斗酒詩百篇(이백두주시백선) / 이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100편을 짓고, 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 장안성 저자의 술집에서 잔다. 天子呼来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 / 천자가 오라 불러도 배에도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자칭신시주중선) / 스스로 칭하기를 '신은 술의 신선이다.' 라고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