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공주댁에서의 연회로 인하여 왕손과 공주가 선대로 내려왔다고 하였고, 금방과 주렴은 궁실의 화려함과 주렴의 사치한 아름다움이다. 入夜開(입야개)는 밤이 깊어가는 때문이고, 遽惜(거석)은 아쉽고 두렵다는 말이요, 瓊筵歡正洽(경연환정흡)은 많은 사람의 마음이 화창하여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는 것이고, 惟愁(유수)는 다만 근심스럽다는 말이고, 銀箭曉相催(은전효상최)는 물시계의 물이 똑똑 떨어져 시각이 자꾸 변하여, 이 밤이 갑자기 가버린다는 것이다. 위의 두 구절은 저녁 연회의 처음을 말했고, 아래 두 구절은 새벽을 재촉하는 근심을 말한 것이다.
* 무평일(武平一) : 당나라 병주(幷州) 문수(文水) 사람. 이름은 견(甄)인데, 자로 행세했다. 영천군왕(潁川郡王) 무재덕(武載德)의 아들이다. 『춘추(春秋)』에 정통했고, 문사(文辭)에 능했다. 무후(武后) 때 재앙이 두려워 숭산(嵩山)에 은거하고, 여러 차례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중종(中宗)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어 수문관직학사(修文館直學士)를 겸했다. 그때가 위후(韋后)의 난정(亂政) 때라 외척들이 들끓었는데, 모당(母黨)을 억제할 것을 청했지만 황제가 위로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 옮겼다. 현종(玄宗)이 즉위하자 소주참군(蘇州參軍)으로 쫓겨나고, 금단령(金壇令)으로 옮겼다. 개원(開元) 말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