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이 믿던 바 임금의 은총이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만약 임금의 은총이 이미 다했다면 앞으로 이 몸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그 말이 楚楚(초초 : 애처롭다)하고 가련하다. 춤추던 옷 위에 오히려 임금께서 전에 내려주신 남은 향기가 있으니, 만약 이런 향기가 없다면 바로 맘속의 한스러운 곳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은 도리어 누구를 한 하겠는가? 자신을 한할 뿐이다.
자신이 일찍이 하나의 제비가 되지 못하니 한 몸이 가볍게 날아 아무런 구속 없이 어느 곳 인들 마음대로 날아 돌지 못할까? 가을이면 가고 봄에는 오는 저 제비와 비교하여 겨울에 떨어져 있다 돌아와서 궁궐 주렴을 돌며 임금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유독이 이 장신궁의 궁인은 마치 금침(금 바늘)이나 낙매(덜어진 매화) 같아 영원히 나올 기약이 없으니, 거듭 제비만 못하다는 것이다.
* 金針(금침) : 황금으로 만든 바늘이다. 금나라 학자 원호문(元好問)의 〈논시절구(論詩絶句)〉에 “원앙새는 수놓아 보여줄 것이고, 금바늘은 남에게 넘겨주지 마라.[鴛鴦繡了從敎看(원앙수료종교간) 莫把金針度與人(막파금침도여인)]”라고 하였다. 수놓은 솜씨는 남에게 보이지만 그 도구는 넘겨주지 않음으로써 자기만의 특기로 간직한다는 것이다. 일설(一說)에 정간(鄭侃)의 딸 채랑(菜娘)이 칠석에 향연을 베풀어 직녀성(織女星)에 빌기를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꿈에 직녀가 나타나 금바늘을 주면서 “그것을 종이에 박아서 3일 동안 말하지 않으면 바느질 기교가 최고가 될 것이다.”라 했다. 꿈에서 이루어진 헛된 일이라는 뜻이다.
* 落梅(낙매) : 〈낙매곡〉이라는 악곡의 이름이다. 진(晉) 나라의 환이(桓伊)가 피리를 잘 불어 〈낙매화곡(落梅花曲)〉을 지었다고 한다. 유극장(劉克莊)은 〈낙매(落梅)〉 시로 인하여 당시 권력자인 사미원(史彌遠)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고 10여 년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 이상은(李商隱) : 이상은(812~858)의 자는 의산(義山)이다. 당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두목(杜牧),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이두(李杜)’ 또는 ‘온이(溫李)’라 불렸다. 처음에는 신관료파[新官僚派, 우당(牛黨)]의 거물인 영호초(令狐楚)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관리 등용 시험에 합격했으나, 영호초가 사망한 뒤에는 반대파[이당(李黨)]인 왕무원(王茂元)의 비호를 받아 그의 사위가 되었다. 신분이 낮았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로 인해 절조가 없다는 평을 받게 되었고, 이당[李黨, 이덕유(李德裕) 일파]에 속한 왕무원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영호초가 속했던 우당[牛黨, 우승유(牛僧孺) 일파]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당나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 속에서 독자적인 시풍을 창조해 냈다. 다정다감한 수사학적 기교와 함께 번잡하게 보일 정도로 고전을 많이 인용하기도 했다. 인용하는 방식도 독특해 문인이 중시하는 정사나 경서류를 훨씬 뛰어넘어 점잖은 선비가 접해서는 안 될 소설과 패사(稗史), 속전(俗傳)까지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는 스스로 엄선한 언어의 마력으로 현실을 넘어선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냈고, 모호한 언어 속에서 애절하고 어둡고 침울한 정조를 자아냈다. 그의 이러한 시풍은 당나라 말기와 송나라 초기에 걸쳐 많은 아류를 낳고 ‘서곤체(西崑體)라 불리면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으나 현실주의를 정통으로 삼는 중국의 문학 풍토에서는 이단시되었다. 그러나 문학혁명 이후 근대시에 눈을 뜬 뒤로 중국 시사에 새로운 한 장을 장식한 존재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