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왕 부차가 월나라에 패하여 자살하니, 월왕이 이에 오왕을 장사 지내주고, 태재 백비를 주벌하니, 오나라 땅이 모두 월나라가 되었다. 셋째 구는 고시에서 미녀를 그림 같고, 꽃 같다고 칭찬하였다는 말이고, 滿春殿(만춘전)은 어찌도 그리 많은가라는 말이다. 이 두 구절은 모두 월왕의 호화로움이고, 극언하여 수구로 아래를 덮으니 하나는 잇고, 하나는 돌리도록 쓴 것이다.
넷째 구절은 봄 궁전이 부서져 황폐한 언덕이 되었고 미인이 다 죽어 황토가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보이는 바는 오직 자고새가 날고 있을 뿐이다. 자고새는 남쪽에서 나와서 울 때 항상 스스로 부르고, 항상 해를 향하여 날며, 서리와 이슬을 두려워하여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나오지 않다가 때로 밤에 날고 나뭇잎으로 등 뒤를 가린다고 한다.
* 이백(李白) :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