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의 왕의 정원은 오나라 왕 부차가 고소성에 도읍을 정하고, 계수나무 정원을 둔 것이다. 황폐해진 대는 고소대이다. 정원이 이미 오래되었고, 고소대가 이미 황폐하여 버들 빛이 긴 세월에 새로움을 옮겼을 뿐이다. 新舊(신구) 두 글자가 문득 감개에 젖게 한다. 둘째 구절은 장협의 <칠명>에 사공이 마름 따는 곡을 연주했다는 말이요. 황폐한 고소대가 적적하고 들리는 마름노래가 봄바람에 맑게 들려오니 옛날을 회고하는 생각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셋째 구절은 보이는 것은 새로운 버들이요, 들리는 것은 마름 노래다. 그러나 모두 당년의 고물이 아니요, 지금 있는 당연 고물은 아마도 오직 서강의 달뿐일 것이라는 말이다. 넷째 구절의 금월이란 말은 일찍이 옛사람을 비춘 적이 있다는 말이다. 이 只今惟有(지금유유) 네 글자는 그 쓰임이 전구(轉句)에 있다.
<이백(李白)은 궁정에서 쫓겨난 천보(天寶) 5년(749년)에 남쪽 오월(吳越) 일대를 유람하며 황폐한 고소대(姑蘇臺)와 월(越) 나라 옛 수도인 회계(會稽)를 둘러보며, 소대람고(蘇臺覽古)와 월중람고(越中覽古)라는 두 시(詩)를 지어 짝을 이루게 했다. 그러나 구성면에서는 정반대로 ‘소대람고(蘇臺覽古)’는 앞의 3구에서 황량한 현상을, 마지막 제4구에서 옛 영화를 읊으며, 지금의 고소대(姑蘇臺)의 황폐한 모습에서 오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함께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실하게 느낀 듯하다. 반면, ‘월중람고(越中覽古)’는 앞의 3구에서 화려한 상황을, 마지막 제4구에서 황량한 현상을 읊었는데, 고사성어(故事成語)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가 이 두 시(詩)에 담겨있다.>
* 이백(李白)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 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