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상(淮上) : 양주(揚州). 회수(淮水)의 물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회양(淮陽) 일대이다. 회수(淮水)는 하남성에서 발원하여 안휘성을 지나 강소성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중국 셋째의 큰 강이다.
* 양자강(揚子江) : 본문에서 揚(양)자를 楊(양)자로 쓴 것은 시인이 일부러 잘못 쓴 것 같다. 양자강은 양주부(揚州府) 의진현(儀眞縣) 남쪽에 있다. 티베트 고원의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통주(通州)와 태주(泰州) 2주를 지나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간다. 당대(唐代)에 양자진(揚子津) 포구에 양자현(揚子縣)을 설치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대강(大江: 즉 장강)을 양자강이라 불렀다. 바로 지금의 강소성 강도(江都)와 단도(丹徒) 사이를 흐르는 대강을 가리킨다. 이후에는 흔히 장강(長江)이라 불린다. 옛날 위 문제(魏文帝)가 광릉(廣陵)에 이르러 군대의 위력을 과시할 때 강의 파도가 세찬 모습을 보고 '아아! 본래부터 하늘이 남북을 갈랐도다'라고 하였다. 강의 맨 중앙을 남랭수(南泠水)라 한다.
* 강두(江頭) : 강가의 나룻배 타는 곳. 강가의 나루 근처. 강기슭. 강가.
* 양류(楊柳) : 버드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높이는 10m 이상이고 잎은 길고 둥글며, 가에 톱니가 있고 끝이 뾰족함. 가지는 가늘고 길게 죽죽 뻗고 4월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이것을 ‘버들개지’라 함. 개울가나 들에 잘 자람.
* 수쇄(愁殺) : 시름겹다. 몹시 슬프게 하거나 시름에 잠기게 함. 깊이 슬퍼함. 殺(쇄)는 뜻을 강조하는 조자(助字)이다. 殺(심할 쇄).
* 풍적(風笛) : 바람 속의 피리소리. 바람결에 들리는 피리소리.
* 이정(離亭) : 역참의 정자. 이별(離別)의 주연(酒宴)을 베푼 좌석(座席). 길을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자리. 이정은 길가의 역정(驛亭)이다. 옛날 성곽(城郭) 밖의 길가에 세웠던, 행인(行人)이 잠시 휴식할 만한 정자(亭子)를 말하는데, 옛사람들이 모두 여기에서 서로 송별을 하였으므로, 전하여 길 떠나는 사람에 대한 송별의 자리를 의미한다.
* 소상(瀟湘) :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 부근에는 경치(景致)가 아름다운 소상(瀟湘) 팔경이 있다.
* 진(秦) : 진(秦)은 장안(長安) 부근을 이른다. 옛날 진(秦) 나라 서울(咸陽)이 있었기 때문에 秦(진)이라 부른다. 지금의 섬서성(陜西省) 경내(境內)이다.
양자강은 이별이 펼쳐지던 곳이다. 楊柳春(양류춘 : 버들이 봄)은 이별할 때이다. 그러므로 거듭 두 楊(양)자를 뜻하였으니, 당나라 시인의 잘하는 점이다. 버들 꽃은 버드나무에 얽히고 이어있어서 늦봄을 나타내고, 渡江人(도가인)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요, 세 번이나 楊(양)자를 쓴 것은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다. 離亭晩(이정만 : 이별 정자의 저뭄)은 이 구절이 바야흐로 친구를 이별하고 돌아선 것이요, 風笛(풍적 : 바람결의 피리)은 역시 버드나무를 따라서 생겨나오니, 대개 옛사람들이 버들을 꺾어 이별하며 주고, 피리 곡조에도 折楊柳(절양류)라는 곡조가 있다.
晩(만) 자는 늦봄을 반영한 것이다. 君向(군향), 我向(아향)은 정자에서의 한번 이별이 각각 향하는 바가 있고, 또 어느 때에 다시 모일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앞의 세 구절은 頓呼法(돈호법)으로 만들었고, 이 구절은 좌절하였으니, 아래의 이별하는 뜻이 슬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 頓呼法(돈호법) : 수사(修辭)하는 데에 있어서의 변화법(變化法)의 한 가지. 시문(詩文)의 중간(中間)에 사람이나 사물(事物)의 이름을 불쑥 넣어 주의(注意)를 불러일으키는 방법(方法). “여러분! 애국(愛國) 동포(同胞여러분!” 등(等)과 같이 쓰임
* 정곡(鄭谷) : 만당(晩唐)의 저명한 시인(詩人)으로 자(字)는 수우(守愚), 한족(漢族)으로 원주(袁州) 의춘(宜春: 지금의 강서江西 의춘宜春) 사람이다. 부친인 정사(鄭史)는 영주자사(永州刺史)를 지냈다. 일곱 살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당 희종(唐僖宗) 광계(光啓) 3년(887)에 진사가 되었고, 우습유(右拾遺)와 도관낭중(都官郎中)을 지냈으므로 사람들이 정도관(鄭都官)이라 불렀다. 허당(許棠), 장교(張喬), 임도(任濤) 등 아홉 사람과 서로 시를 주고받아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방림십철(芳林十哲)이라고 불렀는데, 자고새로 부를 지어 경책의 말을 전한 자고시(鷓鴣詩)로 명성을 얻어 사람들이 정자고(鄭鷓鴣)라고 불렀다. 또, 벼슬에서 물러나 앙산(仰山)에 은거하고 있을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가 조매(早梅)라는 시를 가지고 와 가르침을 청하니 “앞마을은 깊은 눈 속인데, 지난밤 몇 가지 매화꽃이 피었네.[前村深雪裡(전촌심설리) 昨夜數枝開(작야수지개)]”라는 구절 중 ‘몇 가지[數枝(수지)]’를 ‘한 가지[一枝(일지)]’로 고치게 하자 제기가 절을 하였다 하여, 이후 사람들이 정곡을 일자지사(一字之師)로 불렀다고 한다. 만년에 의춘(宜春)의 앙산서옥(仰山書屋)으로 돌아가 북암(北岩) 별서(別墅)에서 죽었다. 시집으로 운대편(雲臺編)이 전하는데 건령(乾寧) 3년(896), 소종(昭宗)이 난을 피해 화주(華州)로 갔을 때, 그도 화주로 부임하여 운대도사(雲臺道舍)란 곳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 제목을 운대편(雲臺編)이라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