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미워하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의 행운이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도 언제나 동의하는 바였고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것들에게 나는 배신당한 경험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문과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국어랑 영어를 좋아했고 사회 과목을 좋아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작가를 꿈꾼 적이 있었고 소설보다는 비판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아주 사소하게는 수능 국어 점수의 배신처럼 조금씩 마주하는 벽들은 나에게 자신감을 잃게 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했다. 영어도 마찬가지. 이 치열한 대치동에서 영어 쪼랩이 된 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고 너무나 많은 영어 우등생들 앞에서 바보가 된 기분을 자주 맛보았다. 이렇게 사소하게 쌓이는 실패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괴리를 키우고 결국 개인에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불일치를 깨닫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 거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나 성격,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늘상 성취의 문제와 연결되어 왔기 때문에 혼란은 쉽게 찾아온다. 어떤 것을 할 때 내가 가장 성취를 얻을 수 있는지, 사소하게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상을 받을지 혹은 취직, 돈을 벌게 된다든지, 성공을 하게 된다든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불일치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건 다 성취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고 우리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여유롭지도 않다. 그러니까 잘하는 걸 해야지가 실패의 교훈이 되는 시점에서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미워하게 된다. 왜 내가 이만큼 좋아하는데 이렇게나 내가 좋아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수가 없는 거야 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미워하게 되는 것만큼 슬픈 건 없는 것 같다.
갑자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왜 들었냐면.... 사실 이것들이 일치할 수 있는 것 역시 생각해 보면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도움 받을 수 있는 자원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테고 부족한 것을 채워 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의 경우에도 그랬던 적이 있던 것 같고. 마이클 샌델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출간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 한번 한국의 공정이나 능력주의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말로 쉽게 이야기되는 많은 것들이 정말 개인의 능력인지 그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이제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잘하지 못하는 게 정말 그 개인의 능력 부족인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래서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우리가 정말 다른 잘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 잘하는 것을 천천히 생각하고 찾을 수 있는 시간과 그것을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모두가 동일하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정말 그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그런 사람인가?
좋아하는 것들을 미워하게 되는 슬픔을 겪는 게 결국 어떤 사람들인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나의 능력과 결부 지어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잘하는 것을 하라는 것만큼 쉽고 안일한 조언도 없다는 걸 느끼기도 하면서...
- <20201129의 일기>
20230517
능력주의, 공정 담론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의 논쟁거리일 때, '능력'의 정의가 여전히 모호하고 그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한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주창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는 듯하다. 늘 그렇듯이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는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