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애정의 미학
덕질이라는 건 개인에게 많은 경험을 안겨준다. 물리적 경험뿐 아니라 감정적인 경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덕질은 애정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마주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나는 혼란스러움과 소위 현타를 느낄 때도 많다. 내가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할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그 감정에 매몰되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는 감정 순환의 고리 속에 빠진다. 늘 그렇듯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그건 이렇게 덕질을 할 때도 느끼는 것들이다.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 감정을 함께 덕질을 한다고 나누고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 순환의 고리에 함께 얽매이게 할 때도 있어서다. 그러다가 또 문득 이런 것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어른스럽지 못하구나,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친구와, 가족과, 애인과의 많은 고민들을 사람들과 나누듯이 이 애정의 혼란을 자연스럽게 넘기고 싶기도 하다. 타인에게 감정 소모하도록 만드는 것을 합리화하고자 함이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 또 다른 타인을 나의 감정에 희생시키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려 해도 실수는 문득문득 튀어나오고, 그만큼 나는 또 작아지는 어른이 된다.
인생의 참 오랜 시간을 덕질에 '투자'해 온 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온 나의 경험을 부정하고 싶지도, 숨기고 싶지도 않은 편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건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쳤던 책의 한 구절이 더 와닿을 때도 있고, 별 의미 없었던 커피가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고 때로는 회피해 왔거나 하지 못했을 일들을 도전하도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곳곳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쓸쓸하게 걷던 길을 내가 좋아하는 이의 노래를 들으며 조금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풍요로운 감정도 없다고 늘 생각한다. 살면서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데 마음을 쓸 시간에 더 많이 사랑하라는 말을 너무나 좋아한다. 사랑도, 미움도 체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체력을, 시간을 사랑에 써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열심히 덕질을 하는 우리 모두는 학생이기도, 직장인이기도, 누군가의 자녀로, 이모로, 선배로, 엄마로 살아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덕질이라는 애정의 공간을 한 켠 늘릴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팬이라는 정체성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아니기에 여러 가지 정체성들의 경합 속에서 골고루 애정을 분배하고 균형을 갖고 살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얼마나, 얼마만큼의 크기로 좋아하든 마음을 내어준 그 한 켠으로 조금 더 사소하게 행복했으면 한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들로 행하는 것들의 무게를 덜어줄 수도 있고, 휴식이 될 수도 있는 관계들 중의 하나가 덕질이다. 너무 사랑하는 걸로 죄책감 느끼지 않고, 덜 사랑하는 걸 슬퍼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그냥 팬이라는 것도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정체성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각각의 역할을 응원하는 나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면 한다.
빠수니는 아무래도 죄가 없고 늘 말하지만 빠수니는 빠수니의 정체성만 갖고 살아가는 편협한 존재가 아니기에, 여러 가지 물리적, 감정적 경험을 하는 빠수니로서의 이 삶을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