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그 참인 명제
내가 사랑한 것들의 속성이 늘 유사하다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건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어떤 지점들을 명중하는 순간들. 그때의 설렘을 잊지 못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이긴다는 명제는 변형되어 어떤 순간마다 존재했고, 언제나 이를 증명해주는 존재들 덕분에 어쩌면 나는 또 무언가를 이겨내는 나날들을 보낸다.
사랑의 슬픔을 사랑의 기쁨으로 이겨내는 그 감정의 순환 역시도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사랑은 원래 유난이야 라는 문장도 내게는 사랑이 이긴다는 문장과 같다.
죽음이라는 건 사실 내게 그렇게 가까운 단어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상실을 급작스럽게 맞이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근 1년 그 어느 때보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이를 덤덤하게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어갈수록 나에게는 점점 두려운 단어로 변해가고 있다. 어떤 상실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게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 미래를 향한 두려움.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었는데 그게 어떤 기분일지, 어떤 마음일지 알아버린 순간 나는 미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잃고 싶지 않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너는 왜 이런 것들을 알게 한 걸까. 때로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불쑥 치밀어 오르는.
너의 마음이 이런 기분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너의 그 부탁들은 이런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겠구나. 그 모든 게 이타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너의 그 시간들이 이랬을 수도 있겠구나.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상실을 깨달으며 슬펐다. 나의 상실과 너의 상실이 같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네가 내놓은 문장이 결국 사랑은 이긴다 이기에 나는 또 계속해서 이 문장을 곱씹는다. 그렇겠지, 맞지. 이 모든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결국 그 사랑했던 시간들이, 사랑을 생각했던 날들이 또 언제든 이겨낼 수 있도록 하겠지.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이 남겠지. 그렇게 그 상실을 알게 한 너를 원망하기 보다는 또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랑만이 우리에게 함께할 거라고 너는 편하게 지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