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아이들 (Ver.2)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 눈의 여왕

by 박쏘쏘

* 전에 업로드한 <태양의 아이들> 스토리를 색다르게 풀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새로 작성했습니다.

1장은 필체만 수정했고 2장부터는 스토리가 변경됩니다.




<1장 눈과 눈의 여왕>

태초의 여왕은 6살짜리 꼬마 모습을 한 앳된 소녀였다. 여전히 소녀는 투명하리라만치 새하얀 옷을 걸치고 있었고, 지금보다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탁, 탁, 탁'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손을 튕기자 환하게 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님이 손길을 뻗자 그곳에 생명이 넘실넘실 태어나며 노래 불렀다.


소녀는 갓 태어난 푸른 강아지풀에게 손을 뻗었다.

소녀가 내민 손에는 분명 그 어떤 악의가 없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안녕-”

순진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방금까지 움직이던 생명이 소녀의 손길 한 번에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생명이 멈춘 것처럼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찰나의 순간 생명들은 소녀가 강아지풀을 얼리는 걸 목격했다.

"아... 아니 난!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걸! 정말이야!"

“가까이 오지 마! 꺄악-!"

소녀가 강아지풀을 얼어붙히던 모습을 지켜봤던 장미꽃이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소녀는 장미꽃마저 꽝꽝 얼려버리고 말았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소녀의 눈에서 얼음장 같은 눈물이 툭하고 떨어지자 하늘에서 눈송이가 툭하고 내리기 시작했다. 놀란 생명들은 하나같이 소녀의 곁을 떠나갔다. 소녀가 머무는 자리에는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폭설이 내렸더랬다.


며칠 후, 뽀득뽀득 하나님이 소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얼어붙은 강아지풀과 장미꽃을 손으로 가볍게 포개어주었다. 그 손짓 한 번으로 다시 그들에게 생명의 숨결이 깃들었다. 하나님은 강아지풀과 장미꽃에게 태양의 온기를 머금어 영원히 얼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이 두 개를 소녀에게 건네며 따뜻한 생명들로부터 떨어지라고 당부했다.


소녀는 터벅터벅 숨 쉬는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여정을 가는 동안 건방진 강아지풀은 내내 투정을 부렸다.

“아! 재미없어! 몇 달째 어디를 그리 급히 간담! 지루하다고!”

소녀는 강아지풀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소녀는 도망치고 도망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스산한 땅에 도착하고 나서야 발길을 멈추었다.

소녀는 눈과 얼음을 부려 겨울왕국을 만들었고, 소녀가 걷는 모든 곳은 얼음길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녀의 손에는 항상 강아지풀과 장미꽃이 꼭 쥐어져 있었다.


소녀의 겨울왕국은 외관으로 봤을 때 냉랭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강아지풀과 장미꽃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소녀는 강아지풀과 장미꽃을 담을 만한 작은 얼음 가방을 만들었다. 항상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너네들을 위한 가방을 하나 만들었어. 자, 여기로 들어가"

"뭐? 그 추운 가방에 내내 들어가 있으라고? 싫어, 싫다고!"

강아지풀이 하도 질색을 하는 바람에 그 뒤로도 쭈욱 강아지풀과 장미꽃은 궁전 호숫가에 얌전히 놓여있게 되었다.

“지루해! 재미없어! 이 궁전은 얼음장 그 자체야! 벽도 얼음이고 살고 있는 여자도 얼음처럼 냉랭해!”

강아지풀이 하품을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장미꽃 또한 꽃밭으로 돌아가 노래와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강아지풀만큼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장미꽃은 매일 밤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장미꽃이 달콤한 계곡에 틀림없이 예수의 아이가 있을지니.”

한동안 강아지풀의 툴툴거리는 투정과 장미꽃의 성스러운 노래만이 겨울왕국을 가득 채웠다.


수년 후, 눈의 여왕은 검은 가마솥에 눈송이를 내리고 다시 궁전으로 돌아왔다. 궁전에 도착한 여왕은 바로 강아지풀과 장미꽃부터 찾았다. 밖에서 주워온 썰매가 퍽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왕의 눈에 들어온 건 싸늘하게 말라비틀어져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영생을 살지 못하는 생명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하나님은 왜 죽을 것들을 나에게 주셨을까’

여왕은 얼음 왕좌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겼다. 여왕의 슬픔은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을 만들어냈고, 어느새 사악한 호브고블린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2장 장미꽃과 태양>

눈의 여왕은 종종 궁전을 나와 푸른 것과 생명을 구경했다. 대부분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지켜만 보았다.


“하얀 꿀벌이 떼 지어 가는 것 좀 보렴.”

“여왕벌도 있어요?”

어느 날은 아이 둘과 할머니가 여왕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자아이 이름은 카이, 여자아이 이름은 게르다였다.

“눈의 여왕이 여기 들어올 수 있을까요?”

“흠 들어오게 하자. 내가 뜨거운 난로에 확 녹여버릴 테니까!”

눈의 여왕은 이 모든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녹여보라지’

여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눈은 누구에게나 내릴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눈이 아니더라도 여왕이 갖고 있는 모습은 다양하다. 눈의 여왕은 카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장미꽃이 떠올랐고, 여자아이를 보고 있으면 태양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구경하던 여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얼음을 훔쳐가는 호브고블린 때문에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왕은 호브고블린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 도깨비가 어디로 숨었담.'

그 요망한 도깨비 괴물이 가르치는 호브고블린 학교가 있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여왕이 도깨비 소굴에 찾아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거울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왕이 호브고블린을 제제하기 전에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여왕은 거울 조각들을 따라갔다. 그 끝에 분명 호브고블린이 있을 터였다.


"여기쯤에 거울 조각의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군. 너도 그렇니?"

눈의 여왕은 대꾸 없을 하얀 암탁에게 말을 걸었다. 하얀 암탁은 눈을 뭉쳐 넣은 듯 새하얀 외관을 갖고 있으며 주로 여왕의 썰매를 이끌었다. 그래 봤자 생명이 깃들지 않아 마법으로만 움직이지만 여왕은 그럭저럭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썰매는 암탁이 이끄는 게 아니라 여왕이 원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었다.


새까만 암흑만이 도사리고 있는 지하 깊은 곳에 호브고블린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호브고블린 도깨비야. 어디에 숨어있는 것이냐?"

여왕의 목소리는 소녀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곧이어 호브고브린들이 모인 지하 마을이 일렁이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휘갈긴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직 몸짓이 가벼운 어린 호브고블린들은 제멋대로 나부끼는 몸을 부축하기 위해 나무를 잡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버려 꼼짝을 못 했다.


이 폭설은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여왕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살려주세요! 여왕님! 시키는 건 전부 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래? 그렇다면 대답해봐. 이곳에서 가장 사악하고 못생긴 호브고블린이 누구지? 세상 모든 것을 흉측하게 비치는 거울을 만든 요망한 도깨비 말이야."

"그놈은 저기 저 마을 언덕에 있습니다. 제발 추위를 멈춰주세요!"

여왕은 추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호브고블릭 마을 언덕으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 거인만큼 몸집이 큰 호브고블린들마저 발부터 천천히 얼어붙으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눈의 여왕이 가는 모든 곳은 얼음길이 되었다.

눈의 여왕은 절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게 이 세계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눈의 여왕이 언덕에 도착하자 나무 뒤에서 몸을 반쯤 꺼낸 호브고블린 한 마리가 잔뜩 겁먹은 눈초리로 기어 나왔다.

여왕은 단 하나의 질문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거울 조각들을 훼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느냐?

여왕은 호브고블린의 대답에 따라 살릴지 말지가 결정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여... 여왕님... 있습니다!"

호브고블린은 추위에 발발 거리면서도 살기 위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를 냅다 질러버렸다.


눈의 여왕은 호브고블린보다 한참 더 컸기에 게슴츠레 호브고블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 방법이 무엇이지?"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아이들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요."

호브고블린은 추위와는 조금 다르게 분한 듯이 바들거렸다. 여왕의 눈앞에 있는 호브고블린은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이 만든 거울을 천사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을 조롱할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근데 앞으로 이 도깨비가 할 말은 천계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추위 앞에 악마도 장사는 없는 모양이었다. 호브골블린은 눈의 여왕 앞에서 살아나갈 궁리만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족 중에 태양의 아이들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태양의 아이들, 그 의미를 눈의 여왕의 모를 리 없다.

결국엔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3장 태양의 아이들, 그 마지막 이야기>


눈의 여왕은 호브고블린과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아이들이 모여 있는 동네로 썰매를 돌렸다.

"태양의 아이들,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시련을 겪은 후 변하지 않는 사랑과 관심으로 거울 조각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의문이 들어서 말이다. 내가 너의 말을 어떻게 믿지?"

"제... 제가 보았습니다!"

사악한 호브고블린은 거울 조각이 깨진 후 잠시 동안은 분했지만, 자신이 가져온 혼란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근데 어린아이들에게 박힌 유리조각이 녹는 것을 몇 번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의 연고를 확인해 보니 모두 태양의 아이들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나아졌다.


거울... 얼음... 태양...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결국 이 사달이 났다. 여왕은 아까보다 더욱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래 잘 들었다."

여왕은 호브고블린에게 대답을 듣자마자 뒤돌지 않고 지하 마을을 떠났다.

호브고블린 마을은 한동안 눈이 녹지 않을 터였다.


눈의 여왕은 평소에 자주 아이들을 구경했던 동네를 찾아갔다.

얼핏 봐도 세상은 심상치 않게 변해있었다.

방금 여왕 옆을 지나간 성인 남자의 눈에도 거울 조각이 박혀있었다.

저 사람에게도, 저 아이에게도, 연이어 마을 사람들의 몸 곳곳에 거울 조각이 박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중 카이라는 사내아이의 가슴에도 거울 조각이 박혀있었다. 눈의 여왕은 카이가 장미꽃을 닮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까칠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했던, 눈의 여왕이 어릴 적 보았던 장미꽃과 퍽 닮은 인상이었다.


"저 아이로 해야겠다."

눈의 여왕은 카이의 썰매에 마법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는 빨간 썰매를 이끌고 산으로 향했다.

카이가 탄 썰매는 미끄러지고 미끄러져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기다리던 여왕의 앞으로 도착했다.


"추워 보이는구나, 내 곰털 코트 속으로 들어오렴"

"하아 여왕님은 너무 아름다워요"

카이의 심장에는 호브고블린의 거울 조각이 박혀있었기에 순순히 여왕의 썰매에 올라탔다.

눈의 여왕은 추워 덜덜 떨고 있는 카이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어 주었다.

그러자 카이의 이마부터 차근차근 떨림이 멈추었다. 눈의 여왕의 입맞춤은 슬프게도 따뜻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추위를 잊게 만드는 것이다.


눈의 여왕은 며칠 전에 호브고블린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거울이 박힌 아이들은 한차례 시련을 겪은 후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여왕은 카이를 데리고 마법사의 꽃밭을 지나, 은빛 금빛의 왕국을 지나, 산적들을 지나, 라프족 여인과 핀족 여인을 지났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그들은 겨울왕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이가 온 후 겨울왕국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눈의 여왕은 카이를 위해 온갖 재미난 것들은 연구했는데, 어느 날은 썰매장을 만들다가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적이 있다. 눈의 여왕이 얼음으로 미로를 만들 때, 길 잃은 까마귀 한 마리가 겨울왕국에 발을 들였다가 동사한 사건도 있었다. 카이는 커다란 얼음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걸 가장 좋아했다. 온 세상이 자기 것처럼 느껴진다나 뭐라나.


태양의 아이 게르다의 온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여왕은 카이와의 이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왕은 카이에게 마지막으로 낱말 퍼즐 게임을 시켰다.

눈의 여왕의 술수에 카이는 마지막 낱말 '영원'만 맞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카이 난 이만 검은 가마솥에 갔다 와야겠어. 그때까지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네 여왕님! 다녀오세요!"

뒤돌아 나서는 눈의 여왕의 발길을 훨씬 무거웠다.


시간이 지나 다시 겨울왕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영원'까지 맞춰진 퍼즐과 녹은 거울 조각의 잔해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여왕은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호브고블린의 거울 조각이 박혀있는 투덜거리던 강아지풀을 닮은 사내아이를 찾아냈다. 여왕은 사내아이의 신발에 마법을 걸어놓았다.


그렇게 눈의 여왕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 끝 -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은 사랑하던 사람이 변했을 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보살피면 원래 알고 있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눈의 여왕에 나오는 '눈의 여왕'과 '태양의 아이'를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시련과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작성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 받으며 단단해지고 수많은 고민 끝에 성장합니다. 그 부분이 왜곡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 글에 비쳤길 바랍니다. 또한 원작의 기독교적 색을 바라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