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use I hate korea, 2024
특별히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십 수년 전, 그저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nclex(미국 간호사) 면허를 따기 위해 교대 근무를 하는 틈틈이 공부를 했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 캐리어에 기출문제가 인쇄된 프린터물을 가득 넣어왔지만 꺼내보지도 않은 채 침사추이 거리를 헤매다 밤늦게 숙소 침대에 누웠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망했구나.’
다음 날 낯선 시험센터를 찾아가 덜덜 떨며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얼마 뒤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게 됐지만 결국 미국으로 떠나보지 못한 채 한국에 자리 잡은 지금은 국거리 재료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무용한 면허증이 되어버렸다.
우연히 넷플릭스를 뒤지다 고아성 배우 주연의 ‘한국이 싫어서’를 보았다.
계나를 보며 이십 대의 내가 계속 겹쳐지며 보는 내내 마음이 움찔했던 영화이다. 한국을 떠나는 계나와 돌아온 계나를 모두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계나(고아성)는 흙수저에다 SKY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에 본인은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계나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사실 이것들은 대한민국 청년들이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일상 그 자체였다. 계나는 그 시절 젊은 나이기도 했고, 서른이 다가옴에도 이룬 것 없어
이 불안하다던 내 이웃이기도 했다.
추운 한국의 겨울,
인천에서 강남역까지 두 시간의 눈물 나는 출근길,
직장 상사의 부조리함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의욕 없는 업무들,
공부할 때 보태준 것 하나 없지만 낡아빠진 24평 아파트의 재건축을 기다리며 삼천만 원 정도의 분담금을 내주길 기대하는 엄마.
삶을 답답해하는 계나에게 뾰족한 수도 없이 무심히 던진 아빠의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계나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그렇게 계나는 살기 위해 다소 우발적으로 한국을 떠난다. 뚜렷한 목적도 계획도 없이 떠난 뉴질랜드가 천국은 아니었다. 추위를 싫어하는 계나에게는 따뜻한 기후와 쾌청한 환경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인종 차별과 멸시가 있었다. 계나는 생활을 위해 한국에서의 전공이나 이력과는 무관한 허드렛일을 하며 삶을 다시 꾸려나간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계나는 자신에 대해 탐구하며 한국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나간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어학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계나에게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고 왜 그 회사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계나는 내가 아닌 그 회사가 나를 선택했다며 민망한 듯 대답한다.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 성적에 맞춰 적당히 전공과 대학을 정하고, 나를 선택한 회사에 출근하는 수동적인 삶. 계나의 말처럼 나 또한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그 무기력한 쳇바퀴에서 탈출하고 싶었었다. 처음 쳇바퀴 밖으로 발을 내밀었던 것은 첫 직장의 퇴사였고 포스터의 계나처럼 커다란 배낭과 캐리어를 어깨와 양손에 가득 진채로 돌아올 날짜를 기약하지 않은 채 남자 친구와 이별하며 떠났다. 섬과도 같은 한국이라는 반도에서 바다를 건넌다고 그 땅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물꼬를 트면 삶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대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 낯선 나라에서 나를 던져보고 한 없는 자유로움과 곤란함을 느껴보는 것.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 보는 것만으로 쾌감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다시 돌아온 나는 곧 취업준비 후 간호사가 아닌 회사원이 되는 순차를 밟게 되었고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선장이 되어본 경험은 마음에 크게 남았다. ‘언젠가’라는 것이 항상 마음속에 남았다. 병원을 그만둔 후 회사를 다니면서도 한때 의료계에 붐이 일었던 중동 의료 수출에 따른 간호사 파견이나 취업을 기웃거렸다.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해외여행에나 사용될 영어를 매일 공부하며 나중에 혹시 무슨 일을 계기로 미국에 가게 된다면, 나도 일을 할 수 있겠지 류의 상상을 하곤 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한국이 싫지 않아서 남았다. 가족과 남자 친구가 있는 이 땅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땅에서 혼자 견디며 병원에 적응해 살아낼 자신이 없기도 했다. 계나는 그런 점에서 나 보다 훨씬 더 용감했고, 또는 한국에서 훨씬 더 무기력한 청춘이었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계나는 뉴질랜드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추방될 위기에 처하며 한국에 잠시 귀국하게 된다. 한국에 잠시 머무르며 헤어진 연인과의 하룻밤을 보내고 공시생 친구의 자살을 접하며 청춘들 각자의 고단함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토록 원하던 기자가 되었지만, 사실되어보니 이상향은 아닌 거 같다는 씁쓸한 지명의 말이나 같이 떠나자는 계나의 제안에도 본인에게는 한국이 더 낫다는 동생 미나를 보며 행복이란 사실 비행기를 열다섯 시간 타면 만날 수 있는 먼 곳이 아닌 각자의 호주머니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행복은 너무 과대평가 된 단어인 것 같아. 나는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행복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