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하시나요?
지난 한 해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육아 휴직 중에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성실히 임했다는 것이다.
사실 휴직과 동시에 학교에 대한 소식에는 귀를 닫게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굳이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일산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내 삶과 연계해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나를 꽉꽉 채워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은 ‘유익하다’와 ‘따뜻함’, 그리고 인간의 기본 욕구인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는 모임을 마친 후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독서 모임만 하면 뇌가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정말 그랬다. 하루 종일 학생들과 비슷한 맥락의 대화와 말씨름으로 끙끙대다 퇴근 후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여 배달시킨 엽떡을 나눠 먹으며 함께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한 그날. 나는 과장을 조금 더 보태자면 정신적 자유를 느꼈다. 일과 후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연수가 아닌 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과의 모임. 그것만으로도 이 모임에 남아야 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독서 모임에 대한 첫 기억이 꽤 설레는 장면으로 (기억의 미화 필터링을 거친 듯) 남아있다. 마치 학교의 비밀 조직처럼 알음알음 추천으로 이런 게 있는데 같이 해볼래요? 와 같은 뻣뻣한 영입 제안에 질문과 동시에 평소에 독서 모임 해보고 싶었다며 일 초 만에 대답하던 내가 기억난다. 실제로 당근 앱에 올려진 2030 독서모임 멤버를 찾는 글들을 읽으며 나는 들어갈 수 없지만 얘네들은 참 재미나겠네 하며 부러워하던 시기였으니, 워킹맘인 나에게 교내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만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친분이나 목적 없이 교내에서 책 좀 좋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공식 독서 모임에는 다섯 명의 교사가 모이게 되었는데, 회원들의 특징은 그다지 업무 관련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간 맡은 학년이나 교과가 다르면 일 년을 근무해도 데면데면한 경우가 많았는데, 평소 깊은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던 동료들과 퇴근 후 책 이야기를 하며 내면까지 돈독해지는 경험은 내가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보건실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경험이었다. 부서, 성별, 연령, 업무, 결혼 유무, 자녀 유무 등 다양한 배경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단정히 묶여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학교 밖을 벗어나자 대화를 나눌수록 생활인으로서 개개인의 개성이 묻어난다는 점이 늘 흥미로웠다. 모임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책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결국 저마다의 삶을 통과시킨 이야기로 이어지곤 했다.
나는 1월 도서였던 친애하는 나의 집을 읽고 어릴 적 나의 집에 대해 쓴 ‘법상동 이 층집’을 퇴고해 공유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하재영 작가는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다. 집에 대해 쓰려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라고 표현했는데 나 또한 유년 시절의 집에 대한 글을 쓰며 다시 그 시절을 살아보는 느낌을 느꼈었기에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글을 나누었다. 사실 타인에게 본인의 어두운 부분을 자기 개방을 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대화가 책에서 시작된다면 마음에 드는 문장 한 줄이 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공감 가거나 기억에 남는 문장 한 줄부터 시작하면 된다. 누군가의 공감이나 의견이 따라붙고 그것이 곧 책 속에는 없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독서 모임을 하면 평소에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독 하지 못할 것 같은 책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 일 년간 모임에서 다루었던 책 목록을 보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그러했다. 책을 읽은 후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국장애인연합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에 대한 관점, 노키즈 존 사업장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쉽게 읽히는 가독성과는 별개로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워낙 범사회적으로 방대하다 보니 깊은 내용까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고 각자의 내적 가치와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불쑥 올라오기도 했는데, 책의 내용처럼 나는 차별 주의자가 아니길 바라는 욕망을 안고 있지만 사회의 약자와 음지를 직면하고 손 내밀지 못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그 자체임을 직면했다.
책을 읽으며 내적 갈등을 느끼던 부분을 사회 교사인 회원님의 예시와 설명을 들으며 책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사회의 불평등과 편견에 둔감하지 않는 언어를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처럼 회원들은 나름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했기에,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시선으로 덧붙이고 설명하는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내 독서 기호와 무관한 두 번째 지구는 없다와 학교에서 길을 잃다는 서가에서 절대 내 손에 닿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방송인 타일러가 쓴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환경 도서 초급자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책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위급한 현실을 쉽지만 묵직하게 풀어 독자를 이해시킨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기후 위기가 과장도 환상도 아닌 발끝까지 다가온 직면해야 하는 현실임을 무섭게 자각하게 되는데, 그동안 너무 환경에 대해 방만했던 스스로를 꼬집게 되었다.
독서 모임의 이름은 각자 아이디어를 내어 에필로그(Epilogue)로 정했다.
에필로그의 사전적 의미는 소설이나 연극, 영화, 만화 등 작품의 줄거리가 끝난 후에 덧붙인 보충된 부분. 후일담으로 번역된다.
실제로 책을 읽은 후 책에 대한 후일담을 하면(에필로그의 뜻처럼) 비로소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나누었던 문장 하나하나는 여전히 머릿속과 입안에 맴돌곤 했다. 독서 모임은 책의 내용을 꼭꼭 씹어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혹시 혼자 읽으며 소화제가 필요함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에게도 함께 읽고 나누는 독서 모임을 추천한다.
2024년 에필로그에서 나누었던 선정 도서
소년을 읽다-서현숙 (에세이)
긴긴밤-루리 (청소년 소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사회)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소설)
두 번째 지구는 없다-타일러 (환경)
학교에서 길을 잃다-로스 W.그린 (교육)
가녀장의 시대-이슬아 (소설)
천개의 파랑-천선란 (소설)
시대예보-핵 개인의 시대-송길영 (경제/경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