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관절이 부러진 날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입원 환자가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 준비물품으로 항상 챙기는 것이 있었다.
‘낙상주의’ 문구가 적힌 노란 팻말.
팻말에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이 픽토그램으로 그려져 있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링거 줄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하체에 힘이 없다 보니 걷다가도 넘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나는 매번 낙상주의 팻말을 침대에 걸어주고, 병원이 낯선 입원환자에게는 주무실 때는 침대난간을 꼭 올려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곤 했다. 병원을 떠난 시간만큼 낙상주의는 내 삶에 와닿지 않은 경고였지만 지난여름, 낙상과 함께 일상이 낙하하던 일이 일어났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저녁,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막 부엌을 정리한 때였다. 겨우 한숨 돌리려 핸드폰을 들었을 때 예기치 않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운 소식을 전해야겠다.
오늘 오후 엄마가 투석받고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져 응급실이다.
CT촬영결과 고관절과 발목이 골절돼서 입원 수속 밟고 있다.
고관절이 걱정된다.
순간 고관절 골절이 회복되지 못해 결국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속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 아빠의 ‘걱정된다’는 마지막 말은 내려앉은 가슴을 땅 밑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평소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 입장에서는 꽤나 큰 결정도 스스로 결정하시고는, ‘그렇게 됐다.’라며 결과만 말씀하시는 분들이시다. 효도할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편하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자식들에게 물어보고 부탁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내심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멀리 타지생활을 하는 삼 남매에게 문자로 남긴 저 문장들은 아빠가 처음으로 보낸 SOS처럼 느껴졌다.
안동으로 가는 막차 시간을 확인하고는 당장 갈아입을 옷만 챙겨 급하게 집을 나섰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는 이불에 파묻혀있는 어린 참새 같았다.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깡마른 몸은 해부학적 뼈마디가 보일 정도이고, 양다리는 붕대로 골반부터 발끝까지 감겨있어 힘겨워보였다.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가 회복할 수 있을까?
무거운 표정을 읽었는지 엄마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불행 중 다행이다. 머리를 안 다쳐서 얼마나 다행이냐.”
모든 엄마는 강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힘들 때 더 강했다. 증조할머니의 치매수발을 수십 년 한 것도 모자라, 넉넉지 않은 살림에 보태려고 보험, 화장품 판매, 가전제품 주부사원에 식품 공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고관절이 부러져 꼼짝 못 하는 와중에 다행을 논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한 번씩 몸이 배겨 움직일 때면 통증에 인상이 있는 대로 찌푸려지는 상황인데 말이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에 떠밀려 강해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괜찮은 척하는 엄마가 괜히 더 안쓰러웠다.
다음 날 고관절을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고서는 주말 동안 돌아가며 엄마를 돌봤다. 잠자리 예민한 아빠가 밤에 간병하긴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간병인을 구하고 냉장고에 간식을 채웠으며 간호사실에 커피를 돌렸다. 손수건으로 가려운 부위를 닦이고 머리를 물수건으로 대충이나마 감겨드렸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공간도 충분치 않은 다인실인데 돌아가며 삼 남매가 오가니 엄마는 아픈 와중에 꽤나 기분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타지에 산다는 핑계로 삼 남매의 간병흉내는 주말에 잠깐씩이었고 이마저도 띄엄띄엄 되어갔다. 2-3주면 조금씩 설 수 있다는 온라인의 정보와는 달리, 정작 엄마가 두 다리로 서게 된 것은 두 달이 지나서였다.
엄마의 일상은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있지도 않던 근육감소가 진행되어 몸무게 앞자리가 3이 되었다.
고령자는 근육소실이 빨라, 한 달 동안 누워있으면 전체 근육의 50%를 소실하게 된다고 한다. 암, 고혈압, 당뇨를 이겨내어 잘 지내던 고령자가 어느 날 빙판길에 넘어져 골절로 병원생활을 하다 두 달 만에 생을 달리했다는 이야기 또한 같은 이치다. 이를 노쇠의 악순환이라고 하는데, 특히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 근육감소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다. 근육소실로 흡인성 폐렴이 발생하거나, 장기간 침상안정으로 혈전이 생기는 경우, 면역저하로 인한 패혈증은 예기치 않은 길로 삶을 인도하기도 한다.
엄마의 고관절 골절 소식에 투석환자인 엄마가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후부터는 만성신부전 파트만 나오면 성인간호학 책을 보다가도 눈물이 흐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내가 늘 그렇다. 나는 항상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엄마는 지난 추석을 앞두고 퇴원했고 양발 서기부터 시작해 한 걸음씩 내딛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보내주신 동영상에서 엄마는 마치 처음 걷는 사람 같다.
살금살금, 미숙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조심스레 내딛는다.
나는 아기의 걸음마를 보듯 다정한 눈으로 동영상 속 엄마의 걸음마를 본다.
병원 사이드레일을 잡고 몇 초간 서 있다가 걷기를 반복하다 말고 뜬금없이 브이자를 펼치는 엄마.
막 걷는 아기에게 그러하듯, 양팔을 크게 펼쳐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