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마치 Nov 28. 2020

가까운 미래, 아버지라는 우주

영화 <애드 아스트라> 리뷰


SF 우주 영화를 좋아한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게 좋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게 우주과학이란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분야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얼마든지 광활한 우주를 즐길 수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사람 영화'에  특히 더 애정이 간다. 좋아하는 영화 Top 3에 드는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우주 과학 자체를 주제로 한 작품보다 우주 속에 놓인 어느 인간의 관계와 사랑에 더 흥미가 있다. '로이'라는 한 사람의 깊은 내면과 그에 얽혀있는 아버지를 그려낸 <애드 아스트라> 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미래.

영화가 시작되자 '가까운 미래'라는 자막이 나온다. 명확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애드 아스트라>에서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는 꽤나 그럴듯해 보인다.  달에 가는 우주선에는 담요를 챙겨주는 승무원이 있었고, 이른바 '달 공항'에 도착하자 마치 체험학습을 온 것 같은 아이들이 여럿 보인다. 달에는 무려 해적들이 있어 인간의 욕심은 여전히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 전 스페이스X에서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는데 얼마나 가까운 미래에 이런 풍경이 올까.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로이는 우주에 또 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가 해왕성 근처에 살아있는 것 같다는 소식을 듣는다. 로이가 미군 소령이자 우주인이 되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지만 십 수년을 떨어져 있어 기억 속에만 있는 아버지. 그가 무려 해왕성에 살아있단다. 이렇게 기가 막힌 소식을 듣는 와중에도 로이는 심경의 변화가 없다. 


영화에서는 로이가 심리 진단을 받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우주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안정된 마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박수가 일정 기준 위로 올라가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받아야 한다. 가슴속에 자신도 모르는 응어리를 외면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살던 로이는 해왕성에 있는 아버지에게 육성 메시지를 보내면서 서서히 감정이 되살아난다. 


가늠조차 안 되는 수십 광년을 날아 해왕성에 도착한다. 아버지는 물리적인 거리로나 마음으로나 지구에서 해왕성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행성에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로이가 집으로 가자고 손을 내민다. 아버지는 우주를 택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얼만큼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살까.

동그란 우주복을 입은 로이의 울부짖음은 들을 수 없었다.  같은 우주복을 입어 통신이 가능한 아버지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아들의 처절한 울음을 들으며 멀어질 때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로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관객은 갑자기 우주복이 벗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공기도 없는 우주의 적막에 귀가 닫히고,  로이의 무너지는 표정만 볼 수 있었다.  


만약 우주처럼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찾는 사람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 펑펑 울고 싶거나, 악다구니를 쓰고 싶은 사람들. 혹은 너무 행복해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은 사람들도. 모르는 척하고 살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끄집어내고, 오랜 시간을 달려 아버지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로이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아무 감정 없이 평정심을 유지해 심리 진단에서 '정상'을 받는 것보다 나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아버지를 오롯이 보는 것이 진짜 '정상'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떤 상처가 있든,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사랑과 미움을 마음껏 표현하고 사는 것.  아버지가 생을 바쳐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게 아니라, 바로 그거 아니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