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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Dec 21. 2020

Once upon a december

영화 <아나스타샤>





영화 <아나스타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워낙 많지만 그중 단 하나를 꼽으라면 이 작품이다. 디즈니도, 지브리도 아닌 '20세기 폭스'사 에서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의 실제 스토리에 영화적 요소를 덧붙여 만든 새로운 이야기. 웅장하면서도 슬픈 분위기와 러시아와 프랑스가 배경인 화려한 그림이 특유의 독특함을 자아낸다. 게다가 고아로 살던 공주가 기억을 되찾는 매력적인 스토리까지. 추운 겨울 혼자 방에서 귤을 까먹으며 감상하면 행복을 느끼기에 딱이다.



Once Upon a December






12월의 어느 날.

'Once upon a december'는 <아나스타샤>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이자 이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이 어렴풋이 과거를 떠올리는 아름다운 장면의 배경 음악이다. 그녀가 아득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듯 나도 이 영화와 이 음악을 들으면 어린 날의 한 장면을 생각한다. 초등학생 시절 방 안에서 가족과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 영화를 보던 순간.  당시 내 작은 시야에 담겼던 그 풍경은 아직도 온기를 머금고 있다. 발이 시려도 양말을 신는 게 아니라 굳이 담요를 덮었고, 엄마는 쌓여있던 집안일은 잠시 미루고 간식을 가져왔다. 겨울이 만든 달콤한 게으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아나스타샤>를 좋아하는 이유도 영화 자체의 매력과 더불어 그런 추억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냐'도 결국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난다. '드미트리'와 '발라디미르'가 할머니와 만날 수 있도록 99%의 도움을 주었다면 만남을 결정지었던 1%는 아냐와 할머니만이 갖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겠다고 다짐하던 아냐는 저도 모르게 오래전 그 날을 떠올리면서 가족과 기억을 모두 되찾는다.



 



파리에서 만나




누구나 자기만이 오롯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모여 앉아 <아나스타샤>를 보던 따뜻한 겨울은 가족 중 나만 기억한다. 다른 이에게는 마음에 각인이 될 만큼 선명한 순간이 아니었을 테다. 그냥 조금 여유롭게 쉬면서 딸과, 언니와 영화나 한 편 보던 평범한 시간이었으리라. 다른 이에게는 휘발된 순간을 나만 기억할 때는 짜릿함도 느껴진다. 이 세상에서 그 순간은 나만의 것이니까.




이 영화를 보지 않고는 일 년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건지, 얼마 전 다시 <아나스타샤>를 봤다. 옆에 있던 가족들은 도대체 몇 번을 보는 거냐며 놀리더니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시 봐도 이 영화 분위기는 되게 특이하다'며 나름의 호평을 한 마디 남겼다. 어린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또 한 번 이 작품으로 함께 한 순간이 생겼다.


 '아냐'와 할머니가 뮤직박스를 들을 때마다 화려했던 궁정 생활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포근하고 노곤한 겨울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내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나스타샤>를 보며 긴긴 겨울을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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