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마치 Feb 08. 2021

불꽃이 뭔지 너무 잘 아니까

영화  <소울> 리뷰


영화 <소울>



픽사가 또 나를 울렸다.

<인사이드 아웃>이 내면의 슬픔을 다독여줬을 때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렇게 많이 울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었는데, 이번엔 그런 '오열'까진 아니었지만 꽤나 눈물을 훔쳤더랬다. 영화 제목부터 눈물 날 것 같은 <소울>이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영혼들은 지구에 가기 위해 통행증을 발급받는다. 통행증을 완성시키려면 여러 기질과 감정 그리고 각자 '불꽃'이 하나씩 필요하다. 지구로 내려가 인간이 됐을 때 삶의 목적이 되거나, 가장 관심 있는 분야, 혹은 그저 삶을 살 수 있다는 신호가 되는 게 '불꽃'이다.






갑자기 영혼들의 세상에 떨어진 주인공 '조'와  아직 불꽃을 못 찾은 영혼 '22'는 불꽃이 곧 살아가는 이유라고 믿는다. 조는 제 불꽃이 음악과 재즈라고 단언한다.  

영화의 결말과 교훈부터 얘기하자면 불꽃이란 삶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다. 그 이유가 조의 재즈처럼 평생 함께할 직업이 될 수도 있지만 불꽃은 떨어지는 나뭇잎, 맛있게 먹는 음식, 친구와의 대화, 스치는 바람 등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각자의 시선으로 아름다운 삶을 즐기는 것이다.

<소울>  태어난 소명이나 삶의 목적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루하루 평범한 보통날들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이 소중했음을 알고 나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밥 한 끼를 먹어도 건강하고 이왕이면 맛있는 식사로, 추웠던 날씨가 조금 풀리자마자 근처 공원으로 향하며 계절을 만끽했다. 며칠 동안은 불꽃을 찾은 영혼처럼 이 아름다운 일상을 사랑했다. <소울>을 보기 전에도 "인조이 마이 라이프"를 외치고 다녔던지라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잠시 잊고 있던 자기애가 더 샘솟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불꽃이 너무 많아서 탈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내 삶을 사랑해도 모자랄 판에 시간과 일에 멱살 잡혀 끌려가는 현실이 오히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켜던 조의 마지막 장면보다 극 중반, 평생 원하던 재즈 피아니스트가 됐는데도 공허함을 느꼈던 조의 얼굴이 더 선명해졌다.


자신을 잃고 괴물이 돼버린 헤지펀드 매니저와 '22'가 수많은 부정을 끌어안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모습을 내게 대입시켰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일상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현실은 과중한 업무와 촉박한 시간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현실과 타협해 음악 교사로 일했던 조의 생활에서 강도를 5단계 정도 더 높인 게 지금 내 삶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안정적인, 그 대신 그 안에 사랑도 즐거움도 없었다.  


나는 영혼들의 도움으로 갑자기 깨어나 책상을 뒤엎었던 헤지펀드 매니저가 될 수 있을까.

조금 덜 시달리고 덜 바쁘다면,  더 여유 있는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소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말고 잠자는 시간이라도 줄여 여유를 가지면 되지 않냐"고들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 나의 불꽃을 되찾아야겠다.

조와 22처럼 몰랐던 게 아니니까. 나는 먹고, 자고, 걷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삶을 흘려보낼 수가 없다. 직장을 박차고 나간 헤지펀드 매니저는 막상 나가서 맞닥뜨린 돈 걱정에 또다시 어느 회사 구석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여유도 결국 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거야"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거무튀튀한 모래에 뒤덮여 영혼 사막을 떠도는 그 괴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내가 몇 개의 감정과 불꽃들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중 하나는 이런 영화를 보고 깊은 울림을 느끼는 게 분명히 있었을 거다.




SOUL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