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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Nov 07. 2024

엄마는 재산이 없어서 좋다고 하셨다

과연 돈이 문제였을까? 

아는 할머니의 아는 할머니, 즉 모르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시던 

엄마의 얼굴에 노여움이 차오른다.

건너 건너들은 남의 집 얘길 하고 계시다는 걸 깜빡하기라도 한 것 같다. 

건성으로 듣다가 말의 첫머리를 놓친 나는 엄마한테 주문한다. 

다시 좀 천천히 말씀해 보시라고.     


“그 할머니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와, 와가꼬 인자 할머니 델꼬 

산책하러 나갔는디, 어찌어찌하다 오줌을 지렸는지, 쌌는지 할매 옷이 젖었는갑제? 

긍께 자기 생각에는 뭔 문제가 있는갑다 해서 할머니 아들한테 연락을 한 거여. 

당신 어머니가 옷에다 오줌을 싸부렀다고. 긍께 아들이 바로 그 다음날 

치매 검사를 받게 했대. 그랬더니 인자 치매라고 나왔고...

치매 진단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놈이 엄마를 찾아와가꼬 

어디 좋은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자고 차에 태웠어. 긍께 엄마는 좋다고 

타고 갔겄지? 그랬는디 그 길로 요양병원으로 델꼬 가분 것이여.

아무리 치매 판정이 났다고 집에 며칠 있어 보도 안 하고 그래야 쓰겄냐?

긍께 이 할매가 내 아파트 가져갈라고, 내 재산 뺏어갈라고 나 여기다 가둬놨냐며 

아들한테 주먹질을 해대고 난리를 쳤다여.”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아들이 너무했다 싶다. 

그래도 “무슨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라고 하며 중립적인 척했다가

엄마의 언성만 높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아무리 사정이 있었도 글제한 달이고 두 달이고 좀 상태를 지켜보다가 

정 아니다 싶으믄 근다(그런다하지만은 치매 판정받자마자 싣고 가버리믄 

쓰겄냐긍께 재산 뺏어갈라고 가둬놨다는 소리를 듣제!!!"     


엄마의 화는 이야기 속 할머니의 아들을 향한 것이자 나를 향한 경고 같기도 했다.

나 치매라고 해도 요양병원에 보낼 생각일랑 말아라는 경고 말이다.


나는 엄마가 필요 이상으로 정색하면 실실 웃곤 했는데, 이번에도 

웃음을 흘려가며 말한다.

“엄마, 걱정 돼? 치매 걸리면 자식들이 요양병원 보낼까 봐?”     


“걱정은 무슨... 난 뺏어갈 재산도 없는디...”

말하고 보니 자기 말이 웃긴지 엄마도 웃으신다. 그러곤 

“난 뺏어갈 게  없어서 괜찮해”라고 하며 또 웃으신다.     


얼마 전 엄마랑 부모자식 간 재산 다툼이 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우린 재산이 없어서 다행”이라며 그때도 같이 웃었던 게 생각난다.

농담이었지만 미미하게나마 진담도 섞여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신 사례에서처럼) 재산 있는 부모를 요양병원 보내면 

부모 재산 뺏으려고 요양병원에 보냈다는 소리를 듣고

재산 있는 부모한테 잘하면 부모 재산 보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할 일이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거의 매일같이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병 때문인지 몸이 심하게 경직되어 있는 노인(할아버지)을 

양쪽에서 부축한 채로 어린아이 걸음마 시키듯 걸음 훈련을 시키던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고목나무처럼 늙고 뻣뻣한 노인의 두 다리를 걷게 하느라 

덥지 않은 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고 있었다.

한 번은 큰언니와 동네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유리창 너머로

또 그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때 우리의 눈길을 따라 창밖을 보던 식당 사장님이 그들이 

부자지간이라는 걸 알려주셨다.

아버지가 저리 되니 서울에 있던 아들들이 내려와 

아버지의 재활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란 분이 건물을 몇 채씩이나 소유한 동네 유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재력가란 정보까지 주시는 것이 동네 사정에 빠삭한 사장님 같았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쩐지”라는 말이 새어 나왔고, 

어쩐지, 라는 그 한마디에 나의 편견을 들켜버린 것인지

언니가 “있는 집 자식들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효(孝)를 해도

돈 때문이라고들 생각하지...”라고 하며 있는 집 자식들 대신 억울해했다.     


돈은 분명 어떤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측면이 있다.

돈 없는 나는 돈의 그런 (부정적인)면을 발견하는 것으로 위안삼기도 한다.

웃픈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서의 얘기들은 엄마가 이야기한 할머니의 아들이 

순수한 사람인데 오해를 받았다는 뜻에서 늘어놓은 게 아니다.

나는 그 아들을 모른다. 물론 그 할머니에 대해서도..

엄마가 말하는 결과만 가지고 말하기도 좀 거시기 하고...


근데 엄마는 다시 할머니 아들 얘기로 돌아간다.

“그래야 쓰겄어.. 놈(남)이라도 글 안하겄다”     


(*빨간 글씨는 종전 원고와 다르게 수정된 대목입니다. 

종전 원고에는 할머니 아들에 대한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수정하였습니다.)




브런치북이 최대 30화까지라는 걸 미숙지 한 탓에

완결 아닌 글(30화 글)로 《40줄에 엄마랑 살게 될 줄이야》 1권을 마감하고

동일 제목의 2권을 만들어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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