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시작이다
우수수 떨어지기만 하다 보니 낙엽 지는 가을이 왔을 때
떨어지는 것은 더 이상 나뭇잎이 아니요 ‘나’였다.
나는 정말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하지만 축축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내 발밑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는 낙엽이 좋았다.
바람 부는 대로 휩쓸려가는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몸이 좋았다.
떨어지는 게 꼭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낙엽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는 전화였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기쁨보다는 다행이라는 안도감이었다.
그간 구직활동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공모전 준비한답시고 백수기간을 엿가락처럼 늘어뜨린 나머지
당장 벌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이력서를 보낸 몇몇 업체에서도
최종 심사를 마쳤을 법한 창작 지원사업 주관기관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어
이대로 아무 데서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답 없음) 하고 있을 때 듣게 된
선정 소식이었기에 휴~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안도감은 금세 걱정으로 바뀌었다.
웹소설 부문에 지원하긴 했지만, 난 웹소설에 있어선 생초짜였다.
초짜이거나 말거나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상 지원금이라는 걸 수령하기 위해선
앞으로 적잖은 분량의 웹소설을 써내야 하는데,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성격이라
나는 시작도 전부터 그 중압감과 압박감에 짓눌려 호떡처럼 납작해져 버렸다.
심사위원들도 나를 두고 걱정이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지원사업 담당자가 참고하라며 보내준 나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서'라는 걸 보니
소설 속 사건에 대한 선행 연구는 잘 되어 있으나 이야기 구성이 일반소설에 가깝다거나
집필 경험은 많은 것으로 판단되나, 웹소설 경험이 없는 것이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라는 의견이 담겨있었다.
글쓰기, 특히 소설이라는 것은 써봐야 아는 것,
절대로 미리 ‘잘’과 ‘잘못’을 알려주지 않는 것 같다.
산을 다 오르고 나서야 ‘이 산이 아닌가벼’ 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어쨌든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재밌는 걸 과업으로 제시된 분량만큼 잘 써서
모처럼, 정말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잘 살려보고 싶었다.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한 웹소설 대박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초반에 기대가 크면 무너지기 쉬우니 한 번에 잘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꺾마라는 대박 작가의 말이
나 같은 초짜의 섣부른 욕심, 욕망을 향한 일침 같았다.
그래도 난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내 응모작이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의 자랑이 되지 못했던 비혼백수 딸은
새로운 도전 앞에 욕심을 내어 엄마의 자랑이 되기를 꿈꿔본다.
꿈꾸는 것만으로 호떡처럼 납작했던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이 부푼 기분을 안고 댕댕이와 함께 산책하러 나간다.
산책길... 발에 밟히는 낙엽소리가 유난히 더 바스락거린다.
저는 이번 글을 끝으로 잠시 휴재에 들어갑니다.
지원사업 과제인 웹소설 진도를 좀 뺀 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글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