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괴롭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
모 광고에 등장하는 말이다.
근데 그게 꼭 나인 것 같단 말이지...
모 웹소설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돼 그 과업을 수행하느라
작년 11월 13일을 끝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럴 때 나는 새삼 또 확인하게 된다. 나는 멀티가 잘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한계를 알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건
하나라도 잘해보자는, 잘 해내야 한다는 의식의 발로이기도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잘 해내고 있는가?
지난달 지원사업 심사위원들을 앞에 두고 중간 보고 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업 초기에 웹소설스럽지 않고 일반소설 같다는 지적 아닌 지적이 있어
장르를 드라마에서 현대판타지 ‘타임슬립물’로 바꾼 터였는데
나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계속 회귀물이라 언급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타임슬립과 회귀의 개념을 혼동한 것이다.
중간보고를 마치고 나서야 그걸 알았고 장르의 기본 개념조차 이해 못 하는
상무식이로 비쳤을까 봐 창피하고 괴로웠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웹소설 마니아이자 작가의 꿈이 있는(드라마작가인지 소설가인지는 분명치 않다)
친구에게 토로했다.
친구: 너 웹소설 안 읽어본 티가 너무 난 거 아니냐?
친구 말대로 나는 ‘책은 종이책이지’라는 주의로 웹소설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을 보는데 무슨 책까지 웹으로 보냐, 싶었달까?
pc나 휴대폰으로 활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확실히 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슬슬 노안이 시작된 마당이기도 하니 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웹이든 종이든 회빙환 같은 장르소설에 어떤 선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축 쳐진 톤으로 말했다.
나: 맞아, 아무튼 기본 개념도 모르면서 쓴다고 덤벼들었냐? 했을까 봐 창피해 죽겠어.
중간 보고를 하고 나와서 집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막 눈발이 날리더라.
정신이 더 명료해지면서 더 창피해지는 거 있지.
친구가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친구: 그 사람들이 뭐래서가 아니라 그냥 니가 창피한 거잖아. 니가 창피를 모르면 괜찮은 건데.
나는 창피를 모를 수 없었다. 그러기엔 완벽주의 성향이 다분한 나였다.
전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주의 성향일 땐 나처럼 별 거 아닌 일로도 괴로움이 큰 법.
그런 나에게 칭찬에 인색한 친구가 의외의 위로를 건넸다.
친구: 야, 나는 읽은 웹소설이 1만 권이야, 1만 권! 한 달 평균 결제액이 20만 원이 넘어.
난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막 읽고 그런다니까. 어쨌든 니가 진짜
성공한 인생이다.
나 : 성공? 웬 밑도 끝도 없이 성공??
친구 : 니가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지.
나: 니가? 너 같은 완벽한 애가?
물론 농담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친구: 그니까 나는 시작을 못 하잖아. 쓰면 완벽히 잘 써야 하니까 시작을 못해, 너는 초짜로서의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쓰고는 있는 거니까 니가 나보다 나은 거지. 나는 정확한 워딩도 알고, 어떤 작가의 어떤 풍이 요즘 인기인지도 알고, 회귀물 중에서도 뭐가 인기고 뭐가 별론지 다 알지만 안 쓰잖아. 너는 도전해서 쓰고 있고.. 그러면 시간 지나잖아? 니가 전문가가 돼 있어. 뭘 알든 모르든 일단은 하고 보는 게 중요한 거야. 무조건!
친구는 부족하고 모지랄 지언정
도전하고 시도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한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닥 새로운 말은 아니지만 그 말에 나 좀 위안 받았다.
친구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