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나은 원고 한 뭉치를 품에 안고 다시 백수로 돌아간다
참여했던 창작지원사업이 종료되었다.
결과물에 대한 담당기관의 평가가 남긴 했지만 어쨌든 내 일은 끝났다.
홀가분하고 좋은데, 그렇게 해서 다시 찾은 내 자리가
‘백수’라는 것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난 그냥 백수가 아니라
한 권 분량의 웹소설 원고가 생긴 백수라는 걸로
나 스스로를 토닥토닥해 본다.
지원사업이 없었다면(그 강제성이 없었다면)
나는 한 권은커녕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지원사업 계약을 마치고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어야 할 지난 12월
관뚜껑 열고 나온 귀신처럼 계엄이라는 망령이 대한민국을 휘젓고 다닐 때
흉흉한 마음에 난 단 한 줄 글도 쓰기 어려웠다.
(솔직히 문학적 재능의 빈곤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할당된 분량이라는 게 있으니 안 쓸 수도 없고ㅠㅠ
돌이켜보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정말 괴로운 12월이었다.
백수가 아니었더라면
지원사업 말고 기댈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정말 포기했을 것이다.
나는 포기했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10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원고를 보며
날 포기할 수 없게끔 만든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결핍이 에너지라는 말도 있듯
결핍이 나를 움직인 건 확실한 것 같다.
결핍은 괴로운 상태이지만
그다지 의욕적이지도 않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란 인간에게
그것(그러니까 막다른 길)만큼 나를 굴리는 데 확실한 동인이 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아주 오래전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었던 친구가(지금은 드라마 작가가 되어있는 친구다)
자기는 당첨될까 봐 복권을 사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첨돼 큰돈이 생기면 글을 쓰는 동력을 상실해 버릴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은 쓰기의 어려움을 얘기함과 동시에 애정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애정이 없었다면 “복권만 당첨돼 봐라, 이 짓부터 때려치우지”라고 했을 테니까.
나도 쓰는 일에 어려움과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처음, 첫 장을 쓰는 일이 어렵고 마지막 장에서
보람이나 애정이라 할 만한 뭔가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완성된 지 얼마 안 된 100페이지짜리 따끈따끈한 원고는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느낌이다.
대박 날 확률은 극히 미미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복권 말이다.
복권 믿고 돈 안 버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다시 구직활동에 돌입해야겠지만
그래도 전에 없던 가능성 하나를 품고 있으니 전과는 또 다른 백수가 아니냐며
나 자신을 또 한 번 토닥여본다.
나에게, 또 모두에게 행복한 4월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