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벚꽃처럼...
군대에서 제대한 큰아들과
저 윗동네서 대학 다니다가 주말을 이용해 집에 들른 둘째 아들과
모처럼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큰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작 혼자 있을 땐 전화를 않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들이 오면 부쩍 전화를 해대는 큰언니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좀 심드렁하게 말했다.
- 군중 속 고독도 아니고 아들들 속 고독이야 뭐야. 왜, 아들들이 상대 안 해줘?
언니는 심드렁한 게 아니라 심드렁한 척, 의기소침한 척 대답한다.
- 상대 안 해주지, 당연히. 다 큰 아들들이 엄마하고 놀겠냐?
- 형부는?
- 있어.
- 온 가족이 다 있네.
- 응. 온 가족이 다 있어. 근데 뿔뿔이 있어.
언니는 계속 외로운 여자를 연기하는 톤으로 말했다.
나는 나의 가족에 대한 평소 지론을 말해줬다.
- 같이 있는데 뿔뿔이 있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의외로 언니가 “맞아” 하며 금방 공감했고, 나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 같이 한 공간에 붙어 있는 것도 안 좋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안 좋고,
한집에 같이 있되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자기 일 보고 있는 게 가장 좋은 상태 같아.
가족이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서로에게 주면서 가까이는 있되,
간섭이나 방해받고 싶지 않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만큼 가까운 건 곤란하다는 생각..
이건 40줄에 엄마랑 살면서 더 분명해진 생각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이나 간섭은
내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나나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하지도 못한다는 걸
엄마와 나 둘 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엄마가 날 두고 “~~ 해야지”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지 일 지가 알아서 하겠지’ 모드로 바뀐 후부터
우리 모녀관계는 훨씬 편안해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큰언니를 보면 아들들에 대한 걱정이 많아(딱히 걱정할 게 없어 보이는데도 그렇다)
아들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경향을 좀 보이다가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혼자 우울해하는 것 같다.
너무 그러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럼 또 언니는
넌 애를 안 키워 봐서 그런다고 할 테고, 그럼 난 또
“전쟁하지 말잔 얘기는 전쟁터에 갔다 온 사람만 할 수 있냐!”라고 소릴 높이게 될 테니
요즘은 나도 많이 삼가는 편이다.
언니에 대고 애들한테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나의 잔소리를..
어쨌든 엄마는 돼보지 못했지만 자식은 돼 본 입장에서
자식에게 자양분이 되는 건 부모의 걱정이 아니라
부모의 밝은 기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로 울 엄마도 나에게 밝은 기운만 계속 뿜뿜 해주시길 바란다.
오늘 정말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 겸 산책을 나갔다.
4월의 화창한 봄날이긴 해도 이른 아침이라 쌀쌀했다.
하지만 춥다는 생각은 조명처럼 환한 벚나무 앞에서 사라졌다.
추운데 옷을 더 껴입고 왔어야지 하는 소리는 날 따뜻하게 못하지만
추울지언정 눈앞에 환한 존재는 날 따뜻하게도 한다.
나 자신한테도, 그리고 나 아닌 누군가한테도
산책로의 만개한 벚꽃처럼 환한 존재가 되고 싶다.
서로에게 환한 존재라야
그늘지고 쌀쌀한 길도 어깨 펴고 걸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