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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줄에 엄마랑 살게 될 줄이야2
06화
면접은 3시였지만...
난 여전히 구직중인 상태로, 학원 강사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by
춘림
Jul 1. 2025
면접 시간은 3시.
하지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간만에 화장이란 걸 해봤다.
쿠션을 찍어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칠하는 일이 묘하게 낯설었다.
면접에 어울리는 옷을 꺼내 입었고,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점검했다.
네이버 지도로 학원 위치를 확인하고, 출발 시간을 역산했다.
머릿속으로 예상 질문을 시뮬레이션하며, 단정하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내 경력을 소개하는 장면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니까 면접은 3시였지만,
내 하루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면접을 위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학원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 아무도 없었다.
그 빈 공간엔, 면접이 있다는 사실이 잊힌 듯한 망각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저기요,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교실로 보이는 곳에서 강사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그녀가 나를 힐끔 보더니, '넌 뭐냐'는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면접이 있어서 왔다고 했을 때, 그녀의 표정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상황파악이 됐는지
나를 출입구 옆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상담실인지 대기실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잊기 좋은 자리였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기실 바깥 프린터기에서 뭔가를 출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업자료 같은 걸 뽑고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그녀가 무심히 말했다.
"아마 30분 안에는 오실 거예요."
학원 출입구 앞에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3시 8분.
"30분을 기다리라고요?"
나의 물음에 그녀가 이렇게 되물었다.
"다른 일정 있으세요?"
그 말이, 면접 외에 다른 일정이 없다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기다려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어이가 없었다. 화도 났다.
내가 왜 불쾌해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
내 시간을 끝까지 함부로 여기는 듯한 태도,
그 모든 것들이 내 하루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화가 났다.
나는 기다리지 않고 그 곳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면접을 고지했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남의 시간, 귀한 줄 아세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면접 시간은 3시로 안내드렸으나, 일정상 도착이 다소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리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말씀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안내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형식적이었지만, 예의는 있었다.
하지만 스크래치 난 나의 마음은 그 몇 줄의 문장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로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보통 그런 경우엔 사정상 좀 늦는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기본 예의고 상식 아닌가요? 학원업의 특성상 더 시간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면접자들은 저처럼 시간낭비하지 않도록 시간약속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그 문자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말이기도 했다.
내 시간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을 그렇게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말.
그날 면접을 본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탈락했다.
백수의 시간도, 구직자의 시간도 소중하다.
그들도, 이 사회도, 이제는 그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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