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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줄에 엄마랑 살게 될 줄이야2
07화
박사 말이 맞을까? 챗GPT 말이 맞을까?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by
춘림
Jul 1. 2025
큰언니는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4도 3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언니를 따라 처음으로 그곳 숲 탐방 모임에 참석했다.
귀촌인들이 만든 작은 모임이었고, 나는 손님처럼 따라간 입장이었다.
얘기만 들었을 땐 산책 겸 바람 쐬는 자리겠거니 했는데,
막상 가보니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곳은 숲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풀과 나무와 열매의 이름을 익히고
그 속성을 공부하는 ‘배움의 장’이었다.
수종이 어떻고, 암수 구분은 어떻게 하고, 줄기의 각도와 이파리 결은 어떻고...
그런 말들이 주를 이뤘다.
참석한 귀촌인들은 다들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로망이 있어
아주 적극적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모임을 이끄는 분은 ‘박사님’이라 불리는 분이었다.
소개를 들어보니, 좋은 학교 나오고 돈도 잘 벌었는데 IMF 때 쫄딱 망해서
죽으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그 길로 수십 년을 산과 함께 살아온 분이란다.
식물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 산에서 몸으로 익힌 지식이 깊어
서울대 교수들도 자문을 구할 정도라 학위는 없지만 ‘박사님’으로 통한다고 했다.
박사님이 숲길을 걷다 닥나무를 가리켰다.
“이게 닥나무입니다. 이걸로 한지 만드는 거 다들 아시죠?”
그러고는 닥나무 열매를 따서 우리에게 건넸다.
“먹어봐요. 몸에도 좋고 맛도 달아요.”
산딸기 비슷하게 생긴 주황색 열매였다. 달콤했다.
다만 끈적거렸고, 열매에서 나온 실인지 가시 같은 게
혀와 입천장에 달라붙어 뒤끝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쩐지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
언니는 한 알만 먹고 말았지만, 나는 서너 알 더 먹었다.
닥나무 열매
박사님은 닥나무를 지나 생강나무 앞에서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부각을 만드는 언니를 향해 말했다.
(언니는 15년째 김부각을 메인상품으로 한 전통 수제 간식 가게를 운영 중이다.)
“이 생강나무 잎을 잘 말려서 부각을 만들어 먹으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아요.”
그 말에 언니가 “그래요? 그걸로 부각을 만들기도 해요?” 하며 눈을 빛냈다.
“아직 만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만들어 팔면 희소성이 있어서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작게 감탄을 나눴다.
“이런 데 오니까 이런 정보도 얻네.”
“그러게, 생강나무 잎 부각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렇게 숲 탐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깜짝 놀랐다.
양팔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낮에 먹은 닥나무 열매가 떠올랐다.
챗GPT를 열고 질문했다.
“양팔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어. 낮에 닥나무 열매를 먹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일까?”
GPT가 답했다.
“닥나무 열매는 일반적으로 널리 검증된 식용식물은 아니고,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조심해야 해.”
나는 또 물었다.
“닥나무 열매 먹고 12시간은 지난 거 같은데, 그렇게 늦게 반응이 올 수도 있나?”
GPT가 답했다.
“12시간 뒤에 두드러기가 나타나는 건 지연형 알레르기 반응의
전형적인 패턴이야. 닥나무 열매와의 인과관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닥나무 열매를 권하던 박사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강나무 잎을 부각으로
만들어 팔아보라는 말도 함께 떠올랐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무도 안파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다.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먹으면 안 되니까 안파는 걸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또 챗GPT에 물었다.
“생강나무 잎, 식용 가능해?”
GPT가 답했다.
“생강나무 잎은 일반적으로 식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으며, 식용 안전성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부족해. 섭취 시 위장장애 등 주의가 필요할 수 있어.”
박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거 먹어도 괜찮아”라고 했고
GPT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섭취를 권장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사람 말은 위험하고, GPT 말은 심심하다.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의외의 효험이 터질 수도 있고, 두드러기가 돋을 수도 있다.
문제는, 둘 다 나한테 아무 책임도 안 진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검색창 앞에서 팔을 긁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말이 맞을까? 챗GPT 말이 맞을까?
나는 아직도 그 사이에서 배우는 중이다.
어느 쪽도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내 몸에 어떤 반응이 생겼을 때,
그걸 그냥 넘기지 않고 질문할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이 두 세계를 함께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람 말을 듣고, 챗GPT를 참고하며
오늘도 내 몸과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내 나름의 정답을 조심스레 짚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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