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댕댕이를 본다
올 한 해 나는 말조심에 대한 필요성을 거의 못 느끼고 살았다.
거의 집콕하며 댕댕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댕댕이는 내가 말실수 좀 했다고 "말이 좀 심하네"라거나
"생각 좀 하고 말해라"라고 하지 않으니까.
댕댕이는 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내가 댕댕이를 애정하는 이유는
내가 모로 누워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내 등에 제 등을 대며
체온을 나눠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댕댕이의 세계는 단순하고 따뜻하며 무심하다.
나는 댕댕이 앞에서 나를 점검하거나 검열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말할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댕댕이랑만 있으면 계속 그렇게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시선과 판단이 느껴지면서
나 홀로 따끔따끔해할 때가 있다.
가끔 발행한 글이 소화되지 않고 목구멍에 얹혀있는 듯한 글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말실수, 아니 글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내 글을 다시 보기 하며 이 대목은 오해할 수 있겠네, 불편할 수 있겠네,
너무 막 썼네... 하며 원고를 고친다. 아무도 고치라고 하지 않았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나는 다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럴 땐 글이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싸한 문장이 써질 때까진 탈출할 수 없는..
그럴싸한 걸 쓸 만한 능력이나 재능이 없어서 갇힐 수밖에 없는 감옥...
누가 나한테 브런치에 글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다.
고쳐보긴 하지만 이미 봐줄 만한 사람들은 다 훑고 지나간 뒤라
고친다 한들 별 의미도 없는데 나 진짜 왜 이러나 싶다.
나의 자매들은 그런 나를 보며 "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성장은 참 나이 따지지 않는다.
불현듯 오은영 박사가 "인생은 쪽팔림의 연속이야"라고 했을 때,
눈물을 훔쳤던 금쪽이가 생각난다.
나는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40대 금쪽이인 것만 같다.
나이 들어 성장하려니 더 아픈 금쪽이...
오늘도 댕댕이는 40줄 금쪽이를 무심히 보다가 곁에 와 체온을 나눠준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