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자마자 고시원에 갈 줄은 몰랐다
연말에는 인터넷으로 고시원을 알아봤고
연초에는 리스트업해 둔 고시원 방을 보러 서울에 간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행 계획 같지만, 실상은 생활 반경 재조정에 가깝다.
때가 때이니 만큼 문득 내 나이를 셈해보다가
옆에 있던 언니에게 말했다.
“내 나이에 고시원이라니 기분이 좀 그런데.”
언니 딴에는 농담이라고 말했다.
“니 나이에 노숙자인 것보단 낫잖아.”
언니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마치 내 삶이 비극보다는 희극 쪽에 가까운 것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비극이 아니긴 하다.
비극이 되기엔 아직 옵션이 좀 남아 있다.
나는 집이 있다.
내 고향에, 내 명의로 된 작은 집이 있다.
대출이 조금 끼어 있지만
요즘 세상에 대출 없는 집이 어디 흔한가.
다만 지금의 나에겐 직장이 없을 뿐이다.
집은 있는데 일이 없고, 일은 있는데 집이 없는 구조.
이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지방러들의 문제다.
그래서 몇 달 전 상경해 원룸을 얻고 직장을 다녔다.
그리고 세 달쯤 지나서 알게 되었다.
이 직장과 나는 오래갈 사이가 아니라는 걸.
사람 관계도 아니고 직장 관계인데
이렇게 확실하게 ‘감이 오는’ 것도 참 재능이다.
나는 그만두었고 다시 이력서를 넣었다.
그 사이 월세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카운트되고 있었고
직장이 언제 구해질지는 챗GPT도 몰랐다.
그래서 방을 내놨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이 빨리 나갔다.
그 와중에 지원했던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왔고,
면접을 봤지만 결과 통보 일에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래, 나이 많고 달라는 돈도 많은 나를 굳이 쓸 리가 없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그냥 다시 고향 가자’고 결론 내렸다.
방을 비워주기로 한 날짜보다 조금 일찍 짐을 빼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모든 게 정리된 줄 알았을 때 전화가 왔다.
면접 본 회사였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란다.
인생이란 늘 이런 식이다.
문을 닫고 나면 다른 문이 열리는데
그 문은 대개 이미 자리를 뜬 뒤에 열린다.
타이밍은 늘 엇박자다.
어쨌든 다시 서울로 가기로 했다.
내 경력을 살려 내가 원하는 연봉을 받으며 일할 확률이
고향에서는 제로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 방을 구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새 회사가 나와 맞을지,
이번엔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덜컥 다시 방을 구하는 건
내 형편에 너무 비싼 선택이었다.
그래서 고시원을 선택했다.
그냥 고시원만 생각할 때는 몰랐는데
그 앞에 내 나이를 붙이니
왠지 삶의 몰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비참한 건 공간이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 상태다.
나는 아직 선택지가 있다.
돌아갈 집도 있고,
이 일이 안 맞으면 접을 수도 있고,
다시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그래서 나는 고시원에 들어가면서
나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몰락이 아니라
유예고, 후퇴가 아니라 재배치다.
나는 고시원에 간다.
아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이라
잠시 머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