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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을 선택한 인간이 조직을 혼란에 빠뜨리다

한 끼의 고독이 단체 식사로 번지다

by 춘림

명자가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째였다.

그 한 달 중 첫 일주일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남은 3주는, 혼밥이었다.


젊은 팀원들과의 점심은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사내 도시락파와 외식파 중 비교적 어린 직원들이 외식파에 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명자에게 마치 자막 없는 드라마 같았다.

입은 움직이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명자는 주식에 ‘주’자도 모르는데,

그들은 점심 내내 뭐가 오르고 뭐가 빠졌는지로 열을 올렸다.

출퇴근길 에피소드를 주고받으며 까르르까르르 웃기도 했는데

명자는 도무지 웃기지 않았다. 그래서 늘 1.3초 늦게 웃었다.

그러다 결국 혼밥을 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카페에 가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곁들여 먹으며

영어회화 앱으로 “I’m fine, thank you.”를 반복했다.

가끔은 웹소설을 읽으며 현실을 잠시 떠나 있었고,

가끔은 인근 쇼핑몰을 거닐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회사로 복귀하던 어느 날

실장의 눈에 명자가 딱 걸렸다. (실장은 명자를 추천해서 입사시킨 사람이었다.)

“왜 혼자 밥 먹어?”

그 말은 걱정이 섞인 듯했지만,

왠지 ‘점검’에 더 가깝게 들렸다.

그 뒤로 실장의 눈빛이 자꾸 따라붙었다.

‘너 언제까지 혼밥하나 두고 보겠어.’

그런 눈빛이었다.


그런데 명자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들켰다.

처음엔 “왜 겉도냐”는 핀잔을 들었고

두 번째는 “혼자 먹는 거, 진짜 괜찮은 거야?”라는 걱정을 들었고

세 번째는 ‘너, 조직 부적응자 아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그러던 중 팀 채팅방에 글이 올라왔다.

“실장님이 혼자 밥 먹는 분들 신경 쓰이신가 봐요.

그래서 1, 3번째 주 금요일엔 다 같이 점심 어떠세요?”

팀원들이 반응했다.

“좋아요~”

“좋죠!”

“좋다구요~!”

명자도 “좋아요!”라고 답했다.

억지로라도 챙겨주는 게 나쁘진 않았다.

아무도 신경 안 써주는 것보단

그런 식의 의무적인 관심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인간에게 마음은 늘 두 개씩 달려 있었다.


그날 오후, 실장이 명자를 따로 불렀다.

“회사 잘 적응하고 있어?”

“네!”

“내 눈엔 그렇게 안 보여.”

“네?”

“같이 밥도 좀 먹고 그래야 친해지고, 그래야 서로 간에 일도 합이 잘 맞는 거야.

그래서 금요일마다 다 같이 밥 먹기로 했어.”

“네, 들었어요. 저도 그렇고 다들 좋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됐어.”


이틀 뒤 금요일.

하지만 그날은 1, 3주 금요일이 아니었다.

점심시간, 명자는 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불려갔다. 자신이 속한 팀 전원과 함께 회의실로.

회의실 안에 단단히 화가 난 실장이 앉아 있었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내가 금요일마다 다 같이 밥 먹으라고 했잖아. 근데 아무 얘기도 없고.”

회의실 공기는 ‘식은 밥’이 되었다.

팀원들이 눈치를 봤다.

누군가 조심스레 말했다.

“다음 주 금요일 아니었어요…?”

실장이 또 폭발했다.

“그럼 그렇게 정했으면 나한테 보고를 해야지! 보고도 안 하고, 각자 제멋대로 하고,

내가 무슨 같이 밥 먹는 거에 환장해서 이러는 줄 알아?”

사실 실장은 매주 밥을 먹으라고 한 것이었지만,

팀원들이 ‘주 1회는 많다’ 싶어 첫째 주, 셋째 주로 조정해놓고

그걸 실장에게 보고하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실장은 그 죄(?)를 명자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에게 물었다.

명자는 죄인이 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혼나는 건 팀원들이었지만, 모든 원인은 명자의 혼밥이었다.

실장이 나간 뒤, 직원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4,50대 진영은 말했다.

“그래, 실장 말이 맞아. 신입은 좀 더 챙겼어야 해.”

30대 초반 진영은 이렇게 말했다.

“점심은 자유죠. 밥으로 친분과 적응을 판단하는 게 이상하죠.”

명자도 조용히 한마디 보탰다.

“혼밥 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그리는 드라마가 문제예요.”


그날 밤, 명자는 AI에게 물었다.

“왜 실장은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나 생각해서?”

AI는 이렇게 답했다.

“널 걱정해서가 아니라, ‘내가 추천했는데 저 친구가 소외돼 보인다’ → ‘내 체면이 구겨졌다’

그래서 ‘단합을 위해 금요일 점심’이라는 의례를 만든 거야. 실제 이유는 네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심 + 체면 회복용 조치에 가깝지.”

명자는 중얼거렸다.

“내 기분 생각해서 좋게 좋게 말해줄 줄 알았더니, 오늘은 또 냉정하네.”


그날 이후, 아직 ‘그 금요일’은 돌아오지 않았다.

명자는 생각했다.

혼밥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점심시간을 내 관심사도 아닌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일로 보내는 건

점심시간을 내주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런 시간을 피하면 서로에게 다가갈 기회는 영영 멀어진다.

관계란 시간을 먹고 자라는 법이니까.

당장은 편하지만, 그 편안함이 오래되면

언젠가 진짜 혼자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지만,

며칠째 아무 연락도, 약속도 없는 삶은

또 묘하게 서늘하다.

그러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면

피곤하고, 가끔은 불편하기까지 한 그 모순.

명자는 알 것 같았다.

이건 단지 점심 문제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라는 걸.

그래서 어쩔 것인가.

혼밥이냐, 아니냐.

명자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혼밥은 자유일까, 고립일까?

명자는 오늘도 그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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