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시리즈 ep.04
첫 출근날 점심은 훈훈했다.
상사가 신입들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줬고, 명자를 포함한 신입들 모두가
“회사생활, 괜찮은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 풍경이 달라졌다.
같은 팀에 입사한 동기가 도시락을 꺼내더니 영어책을 펼쳤다.
점심시간마다 혼자 도시락을 먹고,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명자는 공중에 붕 떠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나가버렸고, 명자는 우두커니 남아 점심을 굶었다.
이 상황을 눈치챈 상사가 물었다.
“밥 왜 안 먹었어?”
그리고는 회사 사람들의 점심 생태계를 알려주었다.
누구는 도시락파, 누구는 외식파. 그러니 어느 쪽이든 껴서 같이 먹으라는 거였다.
그 뒤로 명자는 외식파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건 합류라기보다 따라가는 것에 가까웠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식사 후엔 어김없이 커피타임.
아직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웃으며 앉아 있자니, 점심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업무처럼 느껴졌다.
도시락을 싸보기도 했지만, 매번 챙겨 다니는 건 명자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 왜 이렇게 구차하게 굴고 있지? 날 기꺼이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리를 메꾸는 엑스트라일 뿐인데.’
하루 일과 중 유일한 자유시간을 굳이 무리에 종속시키려 애쓰는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명자는 혼자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입사 일주일째 되던 날, 점심시간에 조용히 회사 밖으로 나왔다.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영어 앱을 켜거나 웹소설을 구상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도록 지루할 틈이 없었다.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들려주자,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왕따라고만 생각 안 하면 혼자가 더 편해.”
그 친구는 예전 직장에서 점심마다 따돌림을 당해 밥조차 편히 먹지 못했다.
부서가 바뀐 뒤 좋은 동료들과 어울려봤지만, 이틀 만에 오히려 혼자가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발적 혼밥러가 되었다.
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은 건 바로 그 말이었다. 혼밥은 소외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
누구와 먹느냐보다, 어떻게 자신과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라는 것.
물론 상사는 여전히 못마땅해했다.
“사람들이랑 어울려야지. 일만 하고 돈만 벌다 가겠다는 거야 뭐야?”
아마도 상사 눈에는 명자가 사회성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조금은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쨌든 명자는 혼밥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혼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혼밥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이고,
거기에는 자기만의 리듬과 작은 사색이 있다고. 때로는 창조의 씨앗도 숨어 있다고.
점심 한 끼를 어떻게 먹든, 그 안에는 각자의 세계가 담겨 있다.
명자의 혼밥에는 ‘쉬고, 배우고, 구상하는’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밥은 아름다웠다.
혼밥은 존엄에 상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존엄을 회복하는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