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승복,뜨거운 땀

미얀마 봉사 현장에서 만난 삶의 무게

by 최국만

붉은 승복을 입은 소년들의 행렬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로 이어졌다.

그들의 어깨에는 가난과 배움의 무게가 동시에 얹혀 있었고,내 이마에는 멈추지 않는 땀이 흘러내렸다.

미얀마의 한낮은 뜨거웠지만,그보다 더 뜨거운 것은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그 땅에 섰지만,정작 배움을 얻은 사람은 나였다.


충북 적십자 봉사단과 함께 미얀마 양곤에 도착했다.

함께한 30여 명의 일행은 각 지역에서 봉사라면 손에 꼽히는 분들이었다.

재해와 사고 현장마다 망설임 없이 달려가던 이들,대부분 50대와 60대의 연령층이었다.

이번에는 국내가 아닌,낯선 땅에서의 봉사였다.취재차 수없이 많은 현장을 경험했던 나도,봉사단과 함께하는 해외봉사는 처음이었다.


양곤 공항에 내리자,늦은 오후의 공기가 후끈하게 몸을 감쌌다.이번 봉사의 주요 임무는 농촌 지역의 승려 학교 화장실을 개.보수하는 일.단순한 건물 하나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그들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편리함을 더하는 일이었다.


다음 날,우리는 양곤에서 한 시간 남 짓 달려 농촌에 들어섰다.비포장도로의 붉은 먼지가 차창으로 스며들었다.

학교 입구에 다다르자,붉은 승복을 입은 앳된 어린 스님들이 대열을 이루고 서 있었다.

50미터 전부터 합장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은 경건했고,해맑았다.


미얀마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한다.

아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수행의 길에 오르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이 어린 아이들이 감내하는 고단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는 우리나라 시골 초등학교보다 훨씬 열악했다.식당에 들어서자,젊은 스님들이 생선을 굽고 있었는데,그 위에는 수천 마리의 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어린 스님들이 공부하는 교실은 20평 남짓 .절반도 깔리지 않은 장판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

대부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앉아

불경을 읽고 있었다.

불경책은 누렇게 빛바랜 작은 소책자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빛은 또렸했다.

마치 어린 나이에 이미 무소유와 무상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듯,흔들림 없는 빛이었다


우리 봉사단의 임무는 화장실 지붕을 덮고,

그곳까지 가는 길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30명은 다섯 조로 나뉘어 각자 맡은 일을 해나갔다.나는 PD였지만,연로한 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스레트를 나르고 못을 박았다.

태양은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길을 만드는 조는 리어카로 돌을 날랐고,

여성 봉사자들은 식당에서 어린 스님과 함께 점심 준비를 했다.

점심 무렵,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모두가 땀에 흠뻑 젖었지만,표정에는 뿌듯함이 번졌다


점심은 나물 세 가지와 바람에 날아 갈 듯

가벼운 밥,그리고 아침에 파리가 덮였던 바로 그 생선이었다.단장은 "어서 드시죠"하고 권했지만,나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린 스님들은 해맑게 웃으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순간,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생선에 파리가 있었든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내 마음이 만든 '상'일 뿐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과 무념, 그 자리를 떠올렸다.

내가 부끄러운 건,그래도 불경을 조금 읽었다는 자만심이었다.결국 나는 숟가락을 들어 어린 스님이 먹는 것보다 더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길과 땀이 모여 내 앞에 온 ,소중한 생명의 음식이었다.


식사 후 우리는 어린 스님에게 한국 이야기를 들려주고,통역을 통해 그들의 수행과 일상에 대해 들었다 .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어린스님들이 공부하는 교실은 차가운 콘트리트 바닥이었다.

단장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여기 장판을 깔아 드리면 어떨까요?"

단장은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예산이 부족하면 제 사비로라도 합시다"


주지 스님께 그 말을 전하자,그 얼굴은 부처의 미소처럼 환해졌다.

아이가 엄마를 바라볼 때의 해맑은 그 표정에 있었다.

어린 스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우리 봉사단은 땀을 흘리며 교실 바닥에 장판을 깔았다.

차가운 바닥에 온기가 번져가고,아이들의 웃음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다음 날 ,우리는 다른 봉사지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그 학교 앞을 지나는데, 전날의 어린 스님들이 붉은 승복을 입고 탁발그릇을 들고,일렬로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발걸음은 무소유와 무집착의 삶을 향한 조용한 행렬이었다.


그 순간,나는 톨스토이의 말이 떠올렸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있지 않고 ,그 욕망을 줄이는 데 있다."

그들의 부족함 속에서도,우리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가 깔아준 장판은 언젠가 닳아 없어질 것이다.그러나 그날의 미소와 온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마치 장발장이 은촛대를 들고 돌아갔을 때,

주교가 한 말처럼

"당신의 영혼을 은으로 샀소.선을 위해 쓰시오."

그 하루의 땀방울은,내 마음의 집착을 조금 덜어낸 '은촛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