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생명인가,고통인가,아니면 살아 있는 죽음인가.”
중국 연변
나는 지금 쇠창살 너머를 바라본다.
그 안에는 흰 무늬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반달곰 수십 마리가 있다.
우리 취재팀은 ‘관광객‘으로 위장해 이곳에 들어왔다.
목표는 단 하나.
쓸개즙 채취의 실체,그 잔혹한 현장을 기록하는 것.
‘곰의 쓸개즙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미신이 동아시아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이 쓸개즙이 간 해독,체력 회복,심지어 정력 강화에 좋다는 신념이 팽배하다.
문제는 이 신념이 수천 마리의 반달곰을 철창 안에서 평생 고문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곰은 CITES l급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국제 거래가 전면 금지된 멸종위기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돈 앞에서는 생명도 협약도 무력했다.
나는 방송국 PD로서,10여년 넘게 수많은 밀렵 현장을 취재 했지만 이번만큼은 불안했다.
6mm 카메라를 분해해 가방 속에 숨기고,현장 녹취를 위해 마이크도 내 자켓 속주머니에 넣었다.
취재 실패는 단순한 방송사고가 아닌,생명을 외면하게 되는 윤리적 실패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우선 연변 서시장을 취재했다.
여기엔 천상갑,오소리,뱀,개구리,심지어 백사까지,판매하는 야생동물이 없는 것이 없었다.
‘네 발 달린 건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이곳에선 실감이 난다.
시장 한쪽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개를 도살해 팔고 있었고,
백사는 사실 일반 뱀을 표백 처리해 속이는 가짜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소규모 사육장은 관광객 상대용 곰 쓸개즙 판매소였다.
곰은 쇠창살 안에 웅크리고 있었고,가슴엔 철판이 둘러져 있었다.
그 철판은 쓸개즙 추출 구멍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즉,살아있는 상태에서 매일 같이 쓸개즙을 짜내기 위한 구조다.
쓸개즙은 맥주잔에 담겨 나왔다.
한 잔에 32,000원. 주로 연변에 온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서 마신다고 한다.
냉장 보관도 아닌, 창틀에 놓여 있던 실온 상태의 액체.
그걸 마시기 위해 반달곰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을 참는다.
눈 빛은 공포와 저주,그리고 생을 포기한 체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진짜 목표로 삼은 곳은 따로 있었다.
가이드는 “작은 데서 먼저 찍자”고 했지만 ,대규모 사육장이 핵심이었다.
울타리 안.
큰 철문이 열리고,나는 한순간 비명을 질렀다.
약 30마리 이상의 반달곰이 자기 몸만한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곰은 앉지도,눕지도 못한 채
가슴엔 30센티 철판이 박힌 채,인간을 향해 멍한 눈 빛을 보냈다.
쓸개를 뽑힌 직후의 곰은 눈으로 울고 있었다.
몸을 움츠린 채,인간을 저주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가이드는 귓속말로 말했다.
“이런 장면은 관광객에겐 절대 안 보여줘요.주인이 외출 중이라 특별히 보여준 거예요.”
나는 환경스페셜 밀렵 취재 중 취재차가 5m 낭떠러지에 굴러 팔 인대가 모두 끊어진 경험이 있다.
가족은 내가 늘 자리를 비워 아내가 우울증으로 패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 모든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내가 계속 기록을 해온 이유는 단 하나다.
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이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너무 쉽게 말한다.
“한 잔 먹는다고 뭐 어때.”
“몸에 좋다는데.”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한 잔이 매일 같이 고문 당하는 생명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그 잔에는 피가 들어 있다.
곰들의 울음이 들어 있다.
곰들의 절규가 들어 있다.
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생명을 도구로 보는 시선,생명 경시의 구조 속에 빠져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생명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외면의 결과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 이 글은 제가 환경스페셜 “밀렵2” 중국 취재 후 기록 입니다.
국내외 밀렵 취재 현장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한 편씩 올려드리겠습니다.
https://youtu.be/BoW9VNkkePQ?si=X41LHfAJ0gi5IZt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