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가 떠난 자리

첫 발을 내딛는 순간,숨이 멎었다.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 취재팀

by 최국만

카메라와 조명,발전기를 짊어진 취재팀은 강원도 옥계의 묵밭을 지나 산길을 올랐다.

8월의 태양은 무자비했고,장비는 어깨를 짓눌렀다.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개망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묵밭 너머 작은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 두 사람이 간신히 몸을 구겨 들어갈 수있는 좁은 구멍.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몸을 낮추자 싸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삼켜버렸다.

바깥은 30도가 넘었지만 동굴 안은 12도 남짓,숨결이 바뀌는 순간,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다.


조명이 켜지자,동굴은 살아있었다.

박쥐 배설물 ,구아노가 1미터 이상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미세한 곤충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더 깊이 들어가자 천장에는 수백 마리의 관박쥐가 매달려 잠들어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박쥐들이 일제히 날아오르자,날갯짓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긴장과 경외가 동시에 밀려왔다.


며칠 뒤 찾은 경남 통영의 페광 동굴은 또 다른 세계였다.

지굴 안으로 들어서자 수천 마리의 박쥐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귓가를 스치는 날갯짓,심장은 쿵광거렸다.그러나 그 순간에도 분명히 느꼈다.

인간은 이 소우주 속에서 그저 잠시 스쳐가는 그림자라는 것이다.


외국은 오래전부터 동굴의 가치를 알았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은 일반인의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관광객은 정교하게 만든 모조 동굴만 관람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한다.

호주와 미국에서는 동굴 내부의 온도,습도,이산화탄소 농도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출입객 수를 조절한다.


동굴은 수십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시간의 보고다.

그 어떤 인간의 욕망도 이 시간을 단숨에 다시 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동굴을 관광지가 아니라 ‘후세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본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동굴 보호 제도가 허술하다.

대표적인 관광동굴은 인원 제한조차 없이 수천 명의 방문객이 드나든다.

종유석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박쥐는 번식을 포기한 채 떠나간다.

동굴은 지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동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물과 돌,미생물과 박쥐가 함께 빚어낸 거대한 소우주다.

우리는 그저 잠시 들렀다 가는 손님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환경은 사실 ‘소유’가 아니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반드시 돌려 받아야 할 자산을 우리가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제라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환경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며,필요하다면 아예 폐쇄해 지켜야 한다.


동굴 속은 인간의 문명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신비였다.

고요와 어둠 속에서 박쥐의 날갯짓은 ,마치 생명 자체의 맥박처럼 느껴졌다.


동굴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생명의 신비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지키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