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촌에서 만난 기억의 선율

“사라진 마을에서 들려온 오래된 음반처럼” 그 노래,그 얼굴,그 시절

by 최국만

추석 특집 방송을 위해 중국 도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정암촌에 들어섰다.

8월 초,숨이 막히도록 더운 여름이었다.

신작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수백 미터에 이르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 환상 같은 풍경을 빚어냈다.


정암촌은 조선족 마을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충북에서 살던 이들이 가난과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등지고

이곳까지 흘러와 정착한 곳이다.


이제는 7,80대 노인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마을 안쪽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세월의 무게가 새겨져 있었다.


마을회관에 도착하자,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고사리무침,손두부,돼지고기 두루치기,수박화채….

밭에서 난 채소와 손맛으로 차려낸 밥상에는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다.

“우리 어머니,아버지 이곳에 와서 고생한 것 말도 못 해….”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들이 처음 이곳을 발을 디뎠던 날 ,사방은 온통 산뿐이었다.

집도,농기구도 없던 시절,오로지 맨손과 부지런함으로 악산을 개간해 밭을 일구어야만 했다.

그 척박한 삶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지만이 희망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어머니’라 부르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젊은 사람은 없습니까?”

그러자 대답이 왔다.

“여기 옥수수,참깨농사 지어선 아이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 어려워….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갔지.

지금 마을에 남은 건 우리뿐이야.“


그날 마을회관 한켠에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아빠가 한국에 돈 벌러 간지 벌써 3년,할머니 품에 맡겨진 채 장난감 하나 없이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보니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이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고 우리 형제를 뿔뿔히 흩어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 어르신이 나지막히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곧 회관 가득 아리랑의 가락이 번져나갔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일제의 수탈 속에 고향을 등지고 온 분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는 곧 한이었고,얼이었으며,우리 삶의 기록이었다.

나도,우리 전스탭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82세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싸릿문이 삐걱 열리며 반겨주신 그분은 오래전 한국에서 가져온 옥수수 종자를 삶아 내주셨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는 한국으로 떠난 아들,며느리,손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추석이나 설에 오겠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해.돈이 너무 드니까…”그렇게 어머니는 홀로 남아 계셨다.


어머니께서 조심스레 한 가지 소원을 말씀하셨다.

“내 부모님 산소가 여기서 30분 거리에 있는데 ,내가 몸이 아파 근 10년을 못 갔어.

국만이가 벌초 좀 해주면 안될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낫과 장갑을 챙겨 어머니의 안내를 따라 산으로 올랐다.

풀과 가시덤불은 허리춤까지 자라 무덤의 흔적조차 가려버리고 있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고,

발밑에서는 뱀이 스르르 지나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때 하늘에서 들여오는 매미 소리는 마치 “조상의 땅을 잊지 말라”는 울음 같았다.


낫을 휘두를 때마다 억센 잡초가 쓰러졌다.

풀은 뽑아도 끝이 없었다.

이곳에서 수십 년을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버텨낸 어머니들의 삶이 꼭 이 풀과 같았다.

척박한 땅에서 뿌리내리려 발버등 치며,세월을 견디고 ,결국은 주름진 얼굴에 눈물만 남겼다.


한참을 헤쳐 나간 끝에 드러난 무덤 앞.

어머니는 작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

술잔을 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아버지,어머니… 이 먼 이국땅에서 벌초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불효를 용서하세요.오늘은 한국에서 온 국만이가 대신 풀을 베어 드렸습니다.

그 순간 ,무덤 앞의 바람이 잠시 멎는 듯했고,숲은 고요에 잠겼다.

나는 눈시울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벌초가 아니었다.

망향의 세월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억척 같이 살아낸 조선족의 한이 한데 얽혀 있는 의식이었다.


벌초를 마친 뒤 ,어머니는 무덤 앞에서 눈을 감고 한참을 계셨다.

그리고 이내 입술을 열었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그 노래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온 세월,부모와 조국을 향한 그리움,그리고 척박한 땅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생명력의 노래였다.

눈물이 흘러도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 삶의 애환을 가장 깊이 담아내는 울림이었다


석양이 구름에 가려지는 저녁,어머니는 묘 앞에 앉아 부모님이 오셨던 고향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셨다.

“내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내 고향에 날 묻어줘.“


세월이 흐른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추석이 다가온다.

그분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돈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그곳이 바로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었다.


어머니,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