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고뇌,그 사이에 선 한 인간의 고뇌,나는 나를 썼다
안데르센은 상상으로 고통을 견디는 법을 알려주었고,
괴테는 내면의 성찰로 삶을 통찰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길 위에서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왔다.
세계문화유산을 취재하기 위해 15일간 덴마크의 안데르센과 독일의 괴테를 취재하러 떠났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했을 때,
시청 앞 광장에는 이미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가득했고,여행정보센터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늘 그렇듯 유럽의 여름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 그 복잡함조차 문화의 향기 속에 묻혀 다르게 다가왔다.
안데르센의 고향 푀 섬에 들어섰을 때,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작고 초라한 생가가 묵직한 울림이었다.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세탁으로 생계를 이어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안데르센은 세상으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한 아이였다.
못생긴 얼굴을 스스로 한탄하며 살아야 했던 그는,
그 상처를 문학의 힘으로 견뎌낸 작가였다.
‘성냥팔이 소녀’ 속의 짧고도 서러운 생은 그의 유년 시절을 닮아 있었고
‘인어공주‘ 의 바다와 하늘은 결핍 속에서도 희망을 붙들려는 그의 영혼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가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고단했던 나의 젊은 날들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20여 군데의 공장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청년이었다.
공장의 쇳가루 냄새와 맨홀 속에서 빵을 씹어 삼키던 눈믈의 기억은 아직도 내 안에 선명하다.
그러나 안데르센이 동화로 자신의 고통을 승화했듯,나 또한 책 한 권,공부방 한쪽에 놓인 책들을 붙잡으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고자 했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결핍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에 있음을 그때 배웠는지 모른다.
이후 독일로 향한 여정에서 나는 괴테와 마주하게 되었다.
바이마르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은 단순한 문학가의 발자취가 아니었다.
괴테는 시인이자 소설가였지만 ,동시에 행정가였고 과학자였으며,
무엇보다 치열한 사유의 사람이었다.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 청년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파우스트’는 인간이란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의 문장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만이 구원 받는다”젊은 시절 ,화장실 옆 작은 공부방에서
홀로 책을 펼치며 영어 단어를 외우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괴테의 말은 마치 내게 던져진 응원 같았다.
가진 것 없던 청년이었지만 ,오직 추구하는 마음 하나로 버텨온 시간이 떠올라 ,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괴테가 말년에 남긴 또 하나의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이론은 모조리 회색이고,생명의 황금나무는 초록색“
나는 그것을 삶의 무게 속에서 실감했다.
이론만으로는 삶을 건널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때로 좌절하고,다시 일어서는 생생한 경험 속에서만 인간은 성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데르센과 괴테.
두 작가의 삶은 달랐으나 결국 인간의 본질은 드러낸다는 점에서 닯아 있었다.
안데르센은 가난과 상처 속에서 희망을 그렸고,
괴테는 풍요와 지성을 통해 인간의 추구를 노래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좇으며 나의 젊은 날을 다시 떠올렸다.
공장의 쇳가루 냄새와 화장실 옆 좁은 공부방의 기억은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동시에 오늘의 나를 만든 뿌리였다.
그여정은 15일간 이어졌고,
나는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뿐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가를 목격했다.
덴마크와 독일의 길 위에서,
나 역시 끝까지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
그리고 언젠가 이 길 위의 사유가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위로로 남기를 바라며,
다시 펜을 들었다.